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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집서 조선, 박지원(朴趾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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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춘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9-02 18:07 조회4,670회 댓글0건

본문

영재집서

(泠3齋集序)

- 조선,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원문과 풀이)

장석위기궐씨왈。

부천하지물。막견어석。

원벌기견。단이착지。리수구부수지신도。

시아지공야。

匠石謂剞3劂4氏曰。

夫天下之物。莫堅於石。

爰伐其堅。斷而斲3之。螭4首龜趺樹之神道。

是我之功也。

장석(匠石 돌을 다듬는 사람)이

기궐씨(剞3劂4氏 돌에 글씨를 새기는 사람)에

“천하의 물건 가운데 돌보다 단단한 것은

그렇게 단단한 것을 베어 내어

자르고 깎고 하여 이수(螭3首)와 귀부(龜趺

신도(神道)에 세우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도

바로 돌을 다듬는 나의 공이니라.”

활동정보

329

기궐씨왈。

구이불마자。막수어각。

대인유행。군자명지。비여유공。장언용비

剞4劂3氏曰。

久而不磨者。莫壽於刻。

大人有行。君子銘之。匪余攸工。將焉用碑

이에 기궐씨가 이렇게 말했다.

“오래도록 닳아 없어지지 않기로는

글자를 새기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것이 없

위대한 인물의 훌륭한 행적에 대하여

군자가 비명(碑銘)을 지어 놓았다 하더라도

글씨를 새기는 나의 공력이 들어가지 않으

장차 그 빗돌을 어디에다 쓰겠는가.”

수상여송지어마렵자。마렵자적연무성。삼

遂相與訟之於馬鬣3子。馬鬣4子寂然無聲。三

그렇게 다투다가

마침내 마렵자(馬鬣4子 무덤)에게 함께 가서

시비를 가리려 했으나,

마렵자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히 있기

세 번을 불러도 세 번 다 대답이 없었다.

어시석옹중。아연이소왈。

자위천하지지견자。막견호석。구이불마자

수연。석과견야。착이위비호。약가불마야

기득이착이각지。우안지축조자불취지이위

於是石翁仲。啞然而笑曰。

子謂天下之至堅者。莫堅乎石。久而不磨者

雖然。石果堅也。斲3而爲碑乎。若可不磨也

旣得以斲4而刻之。又安知築竈3者不取之以爲

이때 옆에 있던

석옹중(石翁仲 무덤 앞에 세워놓은 석인(石

껄껄대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것으로

돌보다 더한 것이 없고,

오래도록 닳아 없어지지 않는 것으로

글자를 새기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것이 없

비록 그러하나

돌이 정말 단단하다면

어떻게 깎아서 빗돌을 만들 수 있겠으며,

닳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글자를 새길 수

그것을 깎아서 새길 수 있는 이상

부엌을 만드는 사람이 가져다가

솥을 앉히는 이맛돌로 쓰지 않으리라 어찌

양자운호고사야。다식기자。

방초태현。초연변색역용。개연태식왈。

차호。오이기지지문석옹중지풍자。기장이

문자개대소。

춘일。서지영재집。

揚子雲好古士也。多識奇字。

方艸太玄。愀4然變色易容。慨然太息曰。

嗟乎。烏爾其知之聞石翁仲之風者。其將以

聞者皆大笑。

春日。書之泠3齋集。

양자운(揚子雲 양웅(揚雄))은 옛것을 좋아

기자(奇字)를 많이 알았다.

한창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다가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변하더니,

개연히 크게 탄식하기를,

“아! 오(烏)야, 너는 알고 있어라.

석옹중의 풍자를 들은 사람들은

장차 이 《태현경》을 장독의 덮개로 쓰겠

하니,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

봄날에 《영재집》에다 쓴다.

오(烏) :

양웅의 아들 양오(揚烏)로, 동오(童烏)라고도 한다.

문학의 신동(神童)이었으나 아홉 살로 요절했다고 한다.

기자(奇字) :

고문(古文 : 공자벽중서〈孔子壁中書〉),

전서(篆書), 예서(隸書), 무전(繆篆), 충서(蟲書)와 함께

한자(漢字)의 육체(六體)의 하나로,

고문의 변체(變體)인데

양웅이 이를 즐겨 배웠다고 한다.

(감상)

일설(一說)에는 이렇게 전한다.

학자인 양웅이 열심히 몰두하여 태현경을 지을 때에

옆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거, 앞으로 장 담그는 항아리 주둥이에나 쓰일 것을

뭣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쓰시고 계시나?”

세월은 무심(無心)하다.

그보다도 무식(無識)한 후손은 더 무심하다.

조상님들이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세운 공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은 조상을 모르면서

어찌 후손이 자신을 알아주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조상을 모르는 사람은 곧 후손을 모르는 사람이며

조상과 후손을 모르는 사람은

곧 과거와 미래를 모두 잃어버린

단지 현재에만 생존하는 짐승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20세기 말에 이라크에 미국이 전쟁을 벌여

바그다드에 보관되던

이라크의 그 귀한 고대 유물이 많이 사라져 버려야 했

그것이 어찌 바그다드의 유물이며

이라크인만의 유물인가?

미국인들 자기네들의 200년 전 종이문서는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소위 문화인이라는 저들이

인류 공통의 문화재인 3,000년전 유물을

폭탄 한 방으로 가볍게 날려 버린 것이다.

인류의 이름으로 지탄(指彈) 받을 일이다.

이러하니

무식한 후손은 지극히 무심한 것이 아닌가?

우리도 국보 1호를

우리의 손으로 불태워 버린 아주 무식한 후손이다.

이 글을 보면서 부끄럽기 한이 없다.

저자의 글은

〈二十一都懷古詩〉만이 별도로 편차되어 간행되었을 뿐이고,

문집은 간행되지 않은 채 필사본 몇 종이 전해지고 있다.

즉, 「泠3齋集」, 「泠4齋書種」, 「後雲錄」 등이 그것이다.

「영재집」은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128)에 소장되어 있는데,

序跋이 실려 있지 않아 편찬 과정을 알 수 없다.

「燕巖集」에 박지원이 쓴 〈泠4齋集序〉가 실려 있으나,

그 내용은 石匠과 剞3劂4氏, 馬鬣3子가 등장하는 일련의 대화로 이

서문을 작성한 연도나 문집 편찬 과정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으

그것이 저본이 된 「영재집」의 서문이라는 명확한 증거도 없다

다만, 「영재집」이

‘古芸書屋’이라는 저자 자신의 堂號가 인쇄되어 있는 전용 罫紙

이 책이 저자의 自編稿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하나의 증거

「영재집」은 匡郭의 上段에는 글자를 校正한 것과

제목의 위치를 지정한 것 등의 표시가 있고,

제목의 아래에는 “此下七首當在第二編塔社夜飮下”, “此下書燕

편차의 순서를 바로잡은 부분도 여러 군데인 것으로 보아,

成冊된 후에 누군가에 의한 교정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

본집 외에 이본으로 「後雲錄」과 「泠3齋書種」이 있다.

「後雲錄」은 규장각본(古3428-444)으로,

並3世集 2권, 金臺臆語, 泠4齋集, 燕臺錄 합 2冊으로 이루어져 있

병세집은 1796년에 편차된 책으로,

저자가 燕行했을 때 중국 문인들이 우리 사신들에게 지어 준 시

금대억어는 연행할 때의 斷想들을 기록한 것이다.

영재집은 자신의 시문을 모은 것으로,

저본인 「영재집」에 비하여 소략한 것으로 보아 選別한 것으로

연대록은 燕臺再遊錄으로,

1801년의 燕行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罫紙는 ‘十椽書屋’이라 쓰인 것을 사용하였는데,

누구의 용지인지 불분명하다.

「泠3齋書種」은 국립중앙도서관장본(한-90-4)으로 4책이며,

제1책의 1~2권은 並3世集,

제2책의 3~4권은 駕洛國, 花郞, 滿洲語 등

국내외 문물에 대해 고증과 해설을 한 古芸堂筆記이다.

제3책은 燕臺再遊錄이고,

별권 1책으로 渤海考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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