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강서원 춘계향사 봉행 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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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서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6 11:07 조회2,080회 댓글0건본문
노강서원 춘계향사 봉행 견문록
노강서원에서 정재공 박태보(朴泰輔) 할아버님 춘향제(春享祭)가 양주유림(의정부+양주)의 주관으로 성대하게 봉행(奉行)되었다.
노강서원은 우리 대종중에서 관리하는 유일한 서원이며 우리의 자랑이고 16세이신 정재공 할아버님을 대종중에서 묘전제(墓前祭)를 모시는 것도 특이한 사항으로 정재공 할아버님이 충신(忠臣)으로 우리 종중은 물론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충신으로 알려진 분이시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역사상에서 강상(剛常)의 정신을 제일로 친다. 그러기에 조선왕조 500년 간 사직(社稷)의 토대는 충열(忠烈)과 강상 그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 선생은 충효와 강상의 정신적 표상(表象)이요 절의(絶義)의 으뜸이시다.""(노강서원 책자:노강서원 원장 이용규 발간 사)
""조선후기 문신(文臣)으로, 어려서부터 총명(聰明)하고 기개(氣槪)가 있어 옳지 못한 일이 있으면 어른에게도 수시로 직언(直言)하였다고 한다. 1689년 인현왕후의 폐출(廢黜)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도중 장독(杖毒)으로 노량진에서 서거하셨다. 숙종은 곧 후회를 하였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 하였다.....중략...우리는 36세의 젊은 나이로 오로지 올곧은 기개와 충성으로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정재공의 정신을 널리 알려, 후학들이 정신적(精神的) 지주로 귀감(龜鑑)을 삼아, 정재공의 훌륭한 정신이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초석(礎石)이 되었으면 한다.""(노강서원 책자:도유사 준서 발간 사)
1. 일 시 : 2007.4.3.11시
2. 장 소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노강서원
3. 참가자 : 양주유림 이용규 원장외 60여명
반남박씨 대종중 준서 도유사외 50여명
4. 정해년(丁亥年) 춘향(春享) 거안(擧案)록

4-1. 초헌관: 임옥빈(양주 향교 전교)
4-2. 아헌관: 박준서(駿緖 도유사)
4-3. 종헌관: 구상회(양주유림)
4-4. 집 례: 박원우(元雨 반남학교장)
4-5. 축 관: 정영수(의정부 시의원)
4-6. 찬 자: 한민석(노강서원 부원장)
4-7. 봉 향: 박시우(졸헌공파)
4-8. 봉 로: 박용우(龍雨 서계종손)
4-9. 봉 작: 박춘서(전 상임유사 남곽공파)
4-10. 전 작: 박홍양(도정공파 총무)
4-11. 사 준: 박찬철(충북 지회장)-변경
노강서원 춘계향사 봉행 견문록(見聞錄)을 올리고자 하는 것은 대종회의 서광? 글 이후에 반가운 서광(瑞光)으로 비취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하기 때문이다.

참사자가 유림의 60여명뿐만이 아니라 우리 종중에서도 50여명이란 많은 종원들이 참석하였다함은 실로 오랜만의 일로 경축할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주유림의 이용규 원장님이하 유림관계자와 참사 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종중의 준서 도유사님이 아헌관으로 봉행 하여 유림에서 주관하는 행사를 우리 종중에서도 관심을 갖고 감사히 생각하고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양주유림의 관련자들도 과거와 달라진 우리종중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고마워하는 말씀들을 들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생가의 직손 된 자로서 민망(憫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긍심(自矜心)을 갖게 하였다.
많은 분들이 봉행에 참여할 수가 있었던 것은 그동안 반남학교에서 동고동락하면서
1. 종사 연구
2. 선조님의 학문 및 문화 야사연구
3. 전례(서원향사, 묘제, 시제, 기제)연구
4. 생활예절, 정신교육
5. 선조묘소 참배, 현장답사교육 등 연구
6. 그리고 이번 춘향제에 대비한 사전 예행습의 및 노강서원의 내외를 청소하는 등 정성어린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반남학교 수료 종원 분들의 헌신적인 열성에 감사를 드립니다.

서계 박세당연구, 서계 朴世堂, 노강서원 정재 박태보 책자를 발간 배포하여 오늘의 춘향제를 더욱 빛나게 한 서계 종손 용우씨와 대종중 관계자에 감사함을 전하고자합니다.
또 대종중에서 물심양명으로 많은 지원을 하시어 춘향제 봉행 후 훌륭한 식사를 할 수가 있었음도 변화하는 서광으로 보인다.
춘향제를 마친 후 서계공과 정재공 묘소를 참배하였다.
서계공 사당을 참배하고 서계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종친애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서계문화재단의 운영에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은 참석자 모두가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오늘 노강서원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뵙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음도 정재공 할아버님의 충성심을 배우는 계기가 된 것도 정재공의 蔭德(음덕)일 것입니다.
저는 여러 분들에게 정도(正道)로 갈 것을 주문하고 정도로 가는 한 배반은 없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종중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총화로 발전하는 종중이 되기를 갈망(渴望)한다.
2007.4.4
http://cafe.daum.net/bannampark
pcs13191@hanmail.net
카페지기 박창서
노강서원에서 정재공 박태보(朴泰輔) 할아버님 춘향제(春享祭)가 양주유림(의정부+양주)의 주관으로 성대하게 봉행(奉行)되었다.
노강서원은 우리 대종중에서 관리하는 유일한 서원이며 우리의 자랑이고 16세이신 정재공 할아버님을 대종중에서 묘전제(墓前祭)를 모시는 것도 특이한 사항으로 정재공 할아버님이 충신(忠臣)으로 우리 종중은 물론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충신으로 알려진 분이시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역사상에서 강상(剛常)의 정신을 제일로 친다. 그러기에 조선왕조 500년 간 사직(社稷)의 토대는 충열(忠烈)과 강상 그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 선생은 충효와 강상의 정신적 표상(表象)이요 절의(絶義)의 으뜸이시다.""(노강서원 책자:노강서원 원장 이용규 발간 사)
""조선후기 문신(文臣)으로, 어려서부터 총명(聰明)하고 기개(氣槪)가 있어 옳지 못한 일이 있으면 어른에게도 수시로 직언(直言)하였다고 한다. 1689년 인현왕후의 폐출(廢黜)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숙종의 분노를 사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도중 장독(杖毒)으로 노량진에서 서거하셨다. 숙종은 곧 후회를 하였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 하였다.....중략...우리는 36세의 젊은 나이로 오로지 올곧은 기개와 충성으로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정재공의 정신을 널리 알려, 후학들이 정신적(精神的) 지주로 귀감(龜鑑)을 삼아, 정재공의 훌륭한 정신이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초석(礎石)이 되었으면 한다.""(노강서원 책자:도유사 준서 발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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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 시 : 2007.4.3.11시
2. 장 소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노강서원
3. 참가자 : 양주유림 이용규 원장외 60여명
반남박씨 대종중 준서 도유사외 50여명
4. 정해년(丁亥年) 춘향(春享) 거안(擧案)록

4-1. 초헌관: 임옥빈(양주 향교 전교)
4-2. 아헌관: 박준서(駿緖 도유사)
4-3. 종헌관: 구상회(양주유림)
4-4. 집 례: 박원우(元雨 반남학교장)
4-5. 축 관: 정영수(의정부 시의원)
4-6. 찬 자: 한민석(노강서원 부원장)
4-7. 봉 향: 박시우(졸헌공파)
4-8. 봉 로: 박용우(龍雨 서계종손)
4-9. 봉 작: 박춘서(전 상임유사 남곽공파)
4-10. 전 작: 박홍양(도정공파 총무)
4-11. 사 준: 박찬철(충북 지회장)-변경
노강서원 춘계향사 봉행 견문록(見聞錄)을 올리고자 하는 것은 대종회의 서광? 글 이후에 반가운 서광(瑞光)으로 비취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하기 때문이다.

참사자가 유림의 60여명뿐만이 아니라 우리 종중에서도 50여명이란 많은 종원들이 참석하였다함은 실로 오랜만의 일로 경축할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주유림의 이용규 원장님이하 유림관계자와 참사 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종중의 준서 도유사님이 아헌관으로 봉행 하여 유림에서 주관하는 행사를 우리 종중에서도 관심을 갖고 감사히 생각하고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양주유림의 관련자들도 과거와 달라진 우리종중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고마워하는 말씀들을 들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생가의 직손 된 자로서 민망(憫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긍심(自矜心)을 갖게 하였다.
많은 분들이 봉행에 참여할 수가 있었던 것은 그동안 반남학교에서 동고동락하면서
1. 종사 연구
2. 선조님의 학문 및 문화 야사연구
3. 전례(서원향사, 묘제, 시제, 기제)연구
4. 생활예절, 정신교육
5. 선조묘소 참배, 현장답사교육 등 연구
6. 그리고 이번 춘향제에 대비한 사전 예행습의 및 노강서원의 내외를 청소하는 등 정성어린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반남학교 수료 종원 분들의 헌신적인 열성에 감사를 드립니다.

서계 박세당연구, 서계 朴世堂, 노강서원 정재 박태보 책자를 발간 배포하여 오늘의 춘향제를 더욱 빛나게 한 서계 종손 용우씨와 대종중 관계자에 감사함을 전하고자합니다.
또 대종중에서 물심양명으로 많은 지원을 하시어 춘향제 봉행 후 훌륭한 식사를 할 수가 있었음도 변화하는 서광으로 보인다.
춘향제를 마친 후 서계공과 정재공 묘소를 참배하였다.
서계공 사당을 참배하고 서계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종친애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서계문화재단의 운영에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은 참석자 모두가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오늘 노강서원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뵙고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음도 정재공 할아버님의 충성심을 배우는 계기가 된 것도 정재공의 蔭德(음덕)일 것입니다.
저는 여러 분들에게 정도(正道)로 갈 것을 주문하고 정도로 가는 한 배반은 없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종중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총화로 발전하는 종중이 되기를 갈망(渴望)한다.
2007.4.4
http://cafe.daum.net/bannampark
pcs13191@hanmail.net
카페지기 박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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