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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11-12 06:44 조회1,8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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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환부역조(換父易祖)와 혈조(血祖)를 위두분깨서 논의 하셨는데. 과거와 현제를 둘로 나누면 과거라함은 족보가 탄생시기를 기점하여 말씀드리면. 과거에는 어떻게 든 자식중 아들을 선 호하여 조강지처가 아들을 배출 못 하고 여식만 출산하면 혈손이(대가) 끈어지니 내(나)형제 중 동생 아들을 형 앞으로 혹은 역으로 형의아들이 동생 앞으로 양자 제도를 언제부터 누구 가문부터 인지 알수없는 제도로. 족보를 제처보면 기록이 있는 것은 다들 알고 있겠지요. 조강지처를 두고 첩실을 들여서라도 후손을 생산하고. 또는 애첩을 바서라도 자식을 받아서 대를 이여 갈려고 (사대부가문이나 양반집에서) 노력을 한 것이 족보기록을 보면 역역하지 요. 결논은 윗대 조상님들이 형간이나 또는 촌수 6촌 8촌 10촌 그 이상에도 가문의 혈통이라 하여. 아들을 주고 받고(양자 제도)로 한것을 그 조상님들이 사후인 세월이 흘러서 오랜 세월 이 지나서. 양자간 후손이 파양을 하겠다는 것은 모르기는 하데 가정법상 불가 하다고 생이 됩니다. (양가에 주고 받은 두분이 생존해계시고 서로간에 합의가 되면 이문제는 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합니다.(이문제도 가정법에서 정의를 내려야 하지 않을가요?) 2. 물론이지요. 중간에서 조선시대 조상님들이 사정이야 어떻은 멸리 도성을 떠나서 산간벽지 나 섬지방으로 이주하여 수대를 생활 하다가 해방이후에 세상이 혼란을 치른후에 조상뿌리 찻고 혈통찾아서 무술보 부터 등재 가문이 다반사로 많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이것이 혈통 이지요/ 3. 양을 줄여서 면수를 줄이라는 것은 소생은 생각이 달라요.? 2번에서 말씀들인 것과 같이 노 론 소론 (즉)당파 싸움에 밀여서 멸리 떠난 간문들이 조상님과 일가 친척을 산넘어 물건너 바라만 보고 왕래 못하고 수백년 지나서 좋은 세상 만나서 조상님 산소 찾으니 나무가 무성 하고 후손이 어제부터 돌보지 않았는지 석물이 없는 조상님은 찾을 수없이 묘가 황페되어 있고 종손이 어디에 살고있는지 알수 없으나 다행이도 족보를 하게 되어서 동서팔방 찾아 서 등재하고 아직까지도 14후퇴때 남쪽으로 오신분들은 혈조따라 혈통따라서 다음페지에 들어 올려고 애쓰고 있는 가문이 많아요? 결론은 양과 페지를 줄여서 비용절감한다, 그러면 족보가 훌륭한 족보가 될가요? 중간에 세적편에 등재 하지못하고 벼슬을 많이 하신 조상님들이 현재 누락이 된 양이 조선왕 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역사가 증명하는 행적이 많ㅇ아요/ 이번족보에 등재 못하면 영원이 빛을 못 볼것 같아요/ 그려면 양줄이고 페지줄여서 족보를 해서 후손에게 조선시대 반남박씨가 사대간문에 손꼽고 문집발간은 조선시대 반남박씨가 세번째로 발간햇습니다. 첫째가 전주류씨 경상도 안동에서 터전을 잡아 대대로 내려온 가문이이고. 두변째가 여강이씨 이언적 가문이 문집을 두번째로 발간 가문이고 세번째가 반남박씨 간이 문집을 발간한 가문인데 지금 어느소파에서 얼마나 보관하고 계시는지 소생은 그 것이 궁금해요? 소생의 종손댁은 諱 世模(參判公). 諱 泰長(都正公). 錦平尉 諱 弼 成(孝靖公). 諱 師淹(양자). 諱 善源(금천공). 諱 相玉(양자). 諱 允壽. 諱 齊常(양자). 諱 啓陽 (양자). 諱 勝哲.(양자) 諱 元緖. 諱 贊玎. 九雨(양자) 복잡하게 혈통을 이여왔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훌륭한 조상님들의 행장이 누락하여 있으니 이번기회에 다 등재 할려니 심사위원께서 불양이 많아서 못 한다라고 하여서 김해김씨나 밀양박씨가문은 어떻게 족보를 하겠으냐고 하엿더니 무답이엿습니다. 페지와 양을 줄이는 것은 반대입니다. 참고 하엿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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