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현적> 호장공의 벌고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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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6 11:21 조회1,925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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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현적> 호장공의 벌고개 이야기
( 반남박씨 광주종보) 1985년 8월15일 창간호 에서 옮겨옴
반남박씨를 벌명당 자손이라고한다. 이는 시조이신 호장공의 묘를 쓸 때 얽킨 일화에서 비롯된다.
호장공의 자제인 급제공(諱휘; 宜의)께서 아버지의 상을 당해 같은마을에 사는 지관에게 묏자리를 부탁했다.
이곳저곳을 살핀 지관은 한곳을지정 하고선 귀가했다.
급제공께서는 낮에 묏자리를 정하면서 보여준 지관의 태도가 미심적어 가만히 지관의 집에 몰래들어가 동정을 살폈다.
지관의 부인과 더불어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중이었다.
<오늘 호장공댁 산소를 정해주었지만 그 자리보다는 큰버드나무밑자리가 명지(名地)였오..그러나 너무 대명당이라 천기를 누설하여 내가 해를 당할것 같아 입을 다물었오..>
숨을 죽이며 그말을 엿듣던 급제공 께서는 단숨에 뛰어가 지관이 잡아준 자리보다 10보(步)가량 밑자리를 잡아 표를 해두고 날이 밝는대로 인부들을 데리고 나가 땅을 팟다.지관이 와보더니 <내가 잡아준 자리가아닌데 어인일이냐? >며 사색이 되어 어쩔줄몰랐다.
당황하던 지관은 <기왕 이리되바에는 내가 이곳을 피해 멀리떠난 뒤 땅을 파도록 하라.>고 타이르고는 허둥지둥 이산소를 떠났다.
그러나 이미 땅를 파기 시작한 뒤였던 탓으로 지관이 미처 멀리 파하기 전에 땅을 팟던곳에서
큰 왕벌이 나와 달아나던 지관의 머리를 쏘아 즉사케 하였다.
이로부터 이고개를 벌고개(峰峴봉현)라 불러오고 있으며 바로 이고개에 있는 아름드리 바위에는 峰峴(봉현) 이라는 石刻<석각>까지 새겨졌는세 이석각은 500여년 이상된 것으로 시조묘역을 찾는많은 후손들에게 벌명당에 얽힌 봉현의 석각을 보지 못함이 한스럽게 되었다.
그런데 이<봉현>이라고 석각된 바위가 흥덕리--신촌간 도로 확장공사로 털려나가게 되었다.
벌명당 자손으로서는 벌과얽힌 봉현의 석각을 보지못함이 한스럽게 되었다.
박희서朴喜緖(숭의학원 총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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