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돌팔매 들어가듯 속담과 우리말
페이지 정보
박찬문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12-22 13:41 조회5,037회 댓글0건본문
평양 돌팔매 들어가듯
석전(石戰), 즉 돌팔매놀이는 오랜 옛날부터 행해지던 놀입니다. 개울이나 고개 등을 사이에 두고 양 편으로 나누어 돌을 던지는 놀이인데, 사내들끼리 용맹을 겨루면서 전쟁 연습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정착되면서 그 해 농사의 길흉을 점치는 놀이로 삼기도 했습니다. 돌팔매놀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수서(隋書)』의 <동이 고구려조>에 “고구려는 매년 정초 패수(浿水, 대동강) 위에 모여 좌우로 두 편을 나누어 서로 수석을 던지며 싸운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돌팔매놀이는 거의 전국적으로 행해졌으나 위 기록에서 보듯 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특히 활발했습니다. ‘평양 돌팔매 들어가듯’이라는 속담이 생겨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이 속담은 사정없이 들이닥치는 모양 혹은 겨냥한 것이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상태를 이르는 말로 쓰입니다.
이 속담은 조선 말기인 1866년에 있었던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가 어느 날 대동강을 타고 평양 인근까지 나타나 다짜고짜 통상을 요구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평안 관찰사인 박규수는 서양 선박과의 통상은 자신의 권한도 아닐뿐더러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에 정중히 출국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물러나기는커녕 근대식 총을 앞세우고 평양에 상륙하여 부녀자를 능욕하고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과 부하 두 사람을 잡아다가 둘은 물에 던져죽이고 이현익은 가두었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우리 군사들에게 그들은 대포와 장총을 쏘아댔으며, 이 소식을 들은 평양 사람들이 대동강 변으로 나와 이들과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가진 무기가 없는 평양 사람들은 대동문 앞에 돌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배를 향해 던졌습니다. 이때 유명한 돌팔매꾼 이만춘이 주먹만 한 돌멩이로 대동강 수심을 재고 있던 자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혀 쓰러뜨렸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편 7명이 죽고 5명이 다쳤으며, 이는 명백한 영토 침범이라고 판단한 박규수가 철산부사(鐵山府事) 백낙연(白樂淵) 등과 상의하여 화공(火攻) 및 포격(砲擊)을 가하여 셔먼호를 불태워 격침시켰습니다. 결국 토머스를 비롯한 전 승무원 23명이 불에 타죽거나 익사하는 것으로 사건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평양 사람들의 돌팔매질이 더욱 유명해졌으며, 속담까지 생겨나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고구려 때 전쟁 연습 삼아 행하던 놀이를 실제로 전쟁에 응용한 경우라고도 하겠습니다.
돌팔매놀이는 일제시대에 금지령이 내린 이후 차츰 시들해졌으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풍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평양 사람들의 돌팔매 실력만 전설처럼 남아서 전해질 따름이지요.
[출처] 평양 돌팔매 들어가듯 |작성자 우보
http://blog.naver.com/pih66/6005113631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