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암(石泉庵) 중수(重修) 추기(追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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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서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12-26 12:32 조회4,450회 댓글0건본문
석천암(石泉庵) 중수(重修) 추기(追記)
반남(潘南)의 봉현(蜂峴)에 있는 석천암(石泉庵)은 바로 우리 시조 호장공(戶長公)과 참의공(參議公) 양위(兩位)의 묘를 지키는 재실이다. 창건하던 사적과 중수하던 연월은 고조부 학생공(學生公)이 기문을 지어 대들보 위에 간직해 두었으니 선대의 위선(爲先)하신 지성을 생각하면 감개와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아아, 이 암자는 평도공(平度公)이 창건한 뒤로 지금까지 세 번 중수하였다. 근년에는 이 암자를 지키는 승려가 한두 명에 불과하여 헐리는 대로 보수할 수 없기에 장차 무너질 지경이니 이것은 쇠약한 승려의 책임이 아니다. 만약에 지으려는 성의만 있다면 어찌 이렇게 되었겠는가. 그리하여 종중에서 상의하여 날을 받아 집을 부수고 병오년 1월 20일에 처음 일을 시작해서 2월 4일 경인 미시(未時)에 상량(上樑)을 하게 되니 바로 도광(道光) 27년(1846)으로 금상(今上, 헌종) 즉위 12년 병오년이다. 재목과 기와는 옛것을 쓰고 간혹 새 재목을 썼다. 횡곽(橫廓) 여섯 칸은 헐어버리고 좌우 두 칸을 덧붙였는데 애를 써서 일을 감독하여 건축의 일이 이루어졌지만 감히 선조의 뜻을 계승했다고 말하리오. 이에 추기(追記)를 지어서 대들보 위에 간직해서 후일의 참고자료로 삼는다.
도광(道光) 27년 병오년(1846) 2월 4일
반남 호장공(戶長公) 21대손 제관(齊管)
감역(監役) 동지(同知) 강몽해(姜夢海)
위글은세적편번역문에서발취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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