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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천 할아버님 사시던 집터 재확인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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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춘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4-28 09:52 조회4,5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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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천 할아버님 사시던 집터 재확인되는가? 

야천 할아버님 사시던 집터(석사암터) 재확인되는가?

야천 할아버님 사시던 집터(석수암(石水庵))발견의 감격!

icon_reply.gif야천 할아버님 사시던 집터 재확인되는가 대종가기

 

1. 참으로 오랜만에 야천 할아버님이 사시던 집터를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아닌가 하여 들뜬 마음으로 2007.8.29일 서울 대의 종원 찬호(贊浩) 조카님과 시급히 전화를 하였다.

 

2. 박찬성씨의 '대종중 도유사 박준서 아저씨께(목록)' 박찬문씨의 '야천 할아버지 묘터와 우물터' 라는 글을 보고는 참으로 기대가 컸다.
"처음으로 2005.3.7일 천안에 사는 창서씨(홈페이지 관리자)와 삼임유사를 지낸 춘서씨가 동네 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찾아낸 것인데 합천에 사시는 홍서씨의 아드님(찬호씨)은 공부하시던 암자터 라고 하니 .우물터와 집터의 진위는 연구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라는 위와 같은 새로운 사항이 발견된 것일까 하는 기대감으로 찬호씨와 통화를 하게된 것이다.
2005.3.7일 처음으로 합천을 가서 공서(홍서)형님의 증언을 토대로 쓴 야천묘소유래(冶川墓所由來)이론(異論) 글을 설명하고 공서 형님의 아드님인 찬호씨에 확인 한 결과는 내가 알고 있는 야천 할아버님 사시던 집터(석수암(石水庵))와 위 글의 장소는 동일한 장소라고 하니 기대는 사라졌다.
물론 거주만 하시던 집이 아니고 공부도 하시면서 거주하시던 집터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든 사항은 아버님(공서씨)한테서 들은 구전(口傳)이라고 한다. 그러면 사시던 집터는 따로 있는가??? download.php?grpid=p7Cn&fldid=6Khs&dataid=77&fileid=1&regdt=20050309062726&disk=18&grpcode=bannampark&dncnt=N&.JPG

                               만휴당공파 박공서(홍서) 형님 내외와 춘서씨

 

3. 합천의 화양리 나곡 마을로 가는 높은 고개마루턱에는 있는 그곳을 가보면 대나무 숲과 잡초가 우거져서 확실한 집터를 확인 할 수가 없었으나 소형 집터를 상상하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러니 집이 있었다면 당연히 옹달샘은 있어야 생활용수로 사용하였을 것이긴 하나 숲이 우거져서 옹달샘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집터 쪽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물기를 발견할 수는 있었다. 단지 집터로 예상되는 앞길(차를 세워둔 곳) 이 옛길이고 뒤로 보이는 길은 최근에 새로 직선화로 넓힌 길이다. 그리고 앞에는 산골짜기 물이 졸졸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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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로 보이는 신설 도로 중간 석사암으로 본 검은 바위들과 박춘서씨             

 

2004.3.30일(48회 정기 대종회 자료)
12면  ㅅ.
제9대 2003년도 제2차 상임유사회의를 2003년 11월 18일 개최하고
1. 陜川 華陽理 樂谷道路擴張工事編入 土地收用의 件
1. 합천 화양리 낙곡(현지서는 나곡으로 표현)도로확장 공사편입 토지수용의 건  

14면 다. 재산관리
ㄱ. 합천 도로부지 5필지 724평수용으로 합천군으로부터 2004.1.12일자 4,542,900원 수령 동시 등기이전 완료하다.

위자료가 뒤로 신설된 도로 편입에 수용된 것으로 보임                         

 

4. 2005년 최근에는 이 터를 매수요청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니 이상한 일이다.
100여 평으로 추산되는 좁은 터이고 인근에는 人家가 없는 한적한 고개 마루의 외딴 터일 뿐만이 아니라 경관도 그리 빼어난 곳으로는 생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 매수 요청 자는 이곳이 야천 할아버님이 사시던 집터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역사적 가치를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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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터로 예상되는 집 뒤편 언덕에서 아래로 바라봄(증언자 만휴당공파 공서 형님 내외와 춘서씨)

 

5. 만약에 이곳이 집터가 확실하다면 집터와 묘소의 거리가 수km되는 너무나 멀기에 이곳 옹달샘 물을 이용하였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근거가 희박할 뿐만이 아니라 물이 필요하였다면 묘소 가까운 곳에서도 물을 같다가 이용하였다고 보이니 이는 근거가 없다고 보이는 바인데 새로운 집터와 옹달샘을 발견하신 것이라면 이는 참으로 큰 공적을 이룩하신 바로 축하를 드리는 바입니다.

 

6. 반찬성 조카님이 건의하신
"1.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린 자 5형제가 살던 옛 집터 복원사업
2.전설 적인 옹달샘 남양홍씨 할머님 지혜로운 위장술로 내 것이라 주인 의식 심어준 할머님 뜻을 받들어 옹달샘복원?"
이라는 곳이 어느 곳인지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여 주신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을 것이라고 봅니다.
야천 할아버님이 사시던 집터를 발견한다는 사실은 집터라는 존재(存在) 발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야천 묘소와 관련된 여러 가지유래를 재조명(再照明)한다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야천묘소유래(冶川墓所由來)이론(異論)의 글에 이의가 있으신 분이 있으면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는 말을 한지가 벌써 2년이 넘었으나 이제라도 이와 관련된 글이 있으니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2007.8.29 
       http://cafe.daum.net/bannampark
              pcs13191@hanmail.net
                   카페지기 박창서


*이 글은 반남박씨족보홈 반남박씨 자료에 등재를 하였습니다*


2007.8.31.11:10분 박찬성 조카님이 전화를 주었다. 새로운 집터를 발견한 것인가를 물었으나? 2005.3.7일 내가 쓴 석수암(石水庵)터 사진을 보고 합천 재각 뒤 대나무 숲이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쓴 글이라니 조금은 기대를 하였는데 실망스럽다. 여러분들의 연구와 협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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