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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척 심온을 제거할 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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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서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5-19 14:37 조회6,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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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척 심온을 제거할 꼬투리

사화로 보는 역사이덕일 지음 석필출판사 184~189 쪽

태종이 선위 직후 조선의 임금이 누구인지를 내외에 과시한 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사돈이자 세종의 장인인 영의정 심온의 옥사가 그것이다.

태종때에 일어난 모든 사건이 그렇듯이 이 또한 태종이 지나친 권력 집중욕과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종이 즉위하자 조정에서는 영의정인 심온을 사은사로 삼아 양위사실을 알리고 명나라의 승인을 받게 했다.

영의정이자 국구인 심온이 먼 길을 떠나자 나라안의 많은 사대부들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심온이 임금의 장인인 까닭도 있었지만 사신이 외국으로 떠날 때 서로 인사하는 것은 하나의 관례였다.

심온을 전별하는 거마가 장안을 뒤덮을 절도로 위세당당했다는 보고를 들은 태종은 불쾌했다.

더구나 심온은 태종이 그토록 발호를 두려워하는 외척이엇다. 하지만 심온을 다스릴 죄명이 없었다.

사행길에 전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벌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찾으려고만 한다면 꼬투리가 없을 수가 없는 법이다.

태종은 한 달 전에 있었던 병조의 사소한 문제를 끄집어냈다.

병조의 사소한 문제란 병조참판 강상인이 총재 심정과 함께 임금의 호위를 맡은 금위 소속의 군사를 배치하면서 이를 세종에게만 아뢰고 상왕 태종에게 고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총제 심정은 왕실을 호위하는 핵심 중앙 군사력인 삼군총제부를 뜻하는데 ,(中略). 말하자면 오늘날 대통령 경호부대다.

태종은 군사 배치를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은 뜻이 혹 군권을 세종에게 속하게 하려는 뜻인지 의심했다.

中略

“국군에 관한 정사는 내 친히 결재하거늘 지금 병조에서 순찰하는 일만을 아뢰고 다른 군사에 관해서는 고하지 않는구나. 이런 의견을 처음 낸 자가 누구냐? 만일 숨기는 자가 있다면 엄벌에 처하겠다.”

병조의 관원들이 떨며 대죄하였다. 문제는 병조판서 박습이 이를 미리 알고있었느냐 하는 점에 있었다.

원래 군병은 도총부에서 주관하고 금위의 병사는 병조참판과 병조좌랑이 주관하므로 병조판서에게는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다. 하지만 태종은 병조참판 강상인과 총재 심정은 물론 병조판서 박습을 비롯해

정랑 좌랑등을 모두 의금부에 가두어 심문하였다. 강상인과 심정은 태종에게 미리 고하지 않은 자신들을 변호했다. (中略)

병조판서 박습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중약)

하지만 총재 심정이 명나라에간 영상 심온의 동생이었던 점이 문제였다.

바로 이 점에 태종의 과녁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엄한 죄를 요청하지 않았다 하여

태종에게 여러번 질책을 당한바 있던 형조와 양사에서 거듭 주청해 이들의 죄는 귀양으로 정해졌다.

이사건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간 심온에게 까지 불똥이 튈줄은 태종을 빼놓고는 그누구도 예상할수 없었다

경연이 폐한후 여러대신과 신하들이 상왕의 궁에들어와 알현했다.

태종이 심온에 대해 불편한 내색을 보이자 병조좌랑 안헌오가 이뢰었다.

심정이 박습 강상인과 함께 사사롭게 말을 난눌때 ‘지금 명령이 상왕과 주상의 두곳에서 나오니

이는 한곳에서 나오는것만 못하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한곳’ 이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中略)

태종이 아닌 세종을 가르킴은 분명한것이다.

병조좌랑 안현오는 강상인 심정등과 주도권을 다투던 상항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것이 었다.

이말에 노한 태종이 박습.강상인 심정을 유배지에서 잡아들여 다시 국문했다.

(中略)

강상인은 태종이 잡으려는 인물이 심온임을 알고있었다.

심온을 끌어드리려면 그의 동생 심정을 연루시켜 자백해야했다

심정은 당연히 혐의를 부인했다.

강상인에게 또다시 압슬형을 가하자 이번에는 직접 심온의 이름을 댔다.

“제가 심온에게 호위 병사를 두 궁에 분속시키려면 갑사가 부족하니 삼천명을 증가해야 겠다.”고 말하고

이어 ‘군무는 마땅히 한곳에 돌려야한다’고 말 했더니 심온역시 옳다고 했습니다“

태종은 바로 이런 자백을 듣기 위해서 이들을 국문한 것이다.

(中略)

심정은 고문자의 의도에 굴복했다. 형인 심온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박습역시 고문에 못이겨 심온을 끌어 들였다.

中略

태종은 이들에 대한 처리를 좌의정 박은과 우의정 유정현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정사 좌명공신이었던 박은과 유정현은 이옥사를 새로이 실력자로 부상한 심온을 제거할 기회로 여겼다.

이들에게는 심온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中略

즉 심온이 세종에게 군권을 돌리려 했으므로 대역죄로 죽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中略

“심온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나 그죄상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해 아뢰라“

태종은 조기 형집행을 멸령했다.

이에 유정현이 나섰다. “박습등이 이미 자복하였으니 하루라도 형을 늦출수 없습니다."

박은도 이에 동조했다.

中略

그리고 이욱을 금부진무로 삼아 의주로 보내 명에서 귀국하는 심온을 잡아오게 했다.

심온은 태종의 성격으로 보아 자신이 살아갈 길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中略

심온은 수원으로 압송된 후 사사 당했다.

심온은 사약을 마시기 전 “내가 이렇게 된것은 좌상 박은의 모함으로 인함이니

이후로 박씨와는 혼인을 하지말라“

원한이 흉부 깊숙이 박혔음을 알수있다.

하지만 박은은 종범이고 주범은 태종이었다

왕실과 혼인 하지 말라고 했어야 제대로 짚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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