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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비한(耳鳴鼻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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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6-17 07:15 조회5,4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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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조선일보에서 퍼온 글입니다.


이명비한(耳鳴鼻鼾)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스크랩 메일 인쇄 입력 : 2011.06.16 22:45

귀에 물이 들어간 아이에게 이명(耳鳴) 현상이 생겼다. 귀에서 자꾸 피리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신기해서 제 동무더러 귀를 맞대고 그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시골 주막에는 한 방에 여럿이 함께 자는 수가 많다. 한 사람이 코를 심하게 골아 다른 사람이 잘 수가 없었다. 견디다 못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느냐며 불끈 성을 냈다.

연암 박지원이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귀울음(耳鳴)과 코골기(鼻鼾)가 항상 문제다. 이명은 저는 듣고 남은 못 듣는다. 코골기는 남은 듣지만 저는 못 듣는다. 분명히 있는데 한쪽은 모른다. 내게 있는 것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남들은 다 아는데 저만 몰라 문제다.

연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안 알아준다고 난리고,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화를 낸다. 그러니 정말 좋은 것을 지녔는데 남이 안 알아주면 그 성냄이 어떠할까? 진짜 치명적 약점을 남이 지적하면 그 분노를 어찌 감당할까? 문제는 코와 귀에만 이런 병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별것 아닌 제 것만 대단한 줄 안다. 이명증에 걸린 꼬마다. 남 잘한 것은 못 보고 제 잘못은 질끈 눈감는다. 언제 코를 골았느냐고 성내는 시골 사람이다.

연암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 있고,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달려 있다(得失在我, 毁譽在人)." 내가 성취가 있는데 남이 칭찬해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해서, 헐뜯고 비방하기 일쑤다. 내가 아무 잘한 것이 없는데 뜬금없이 붕 띄워 대단하다고 하면 그 자리가 참 불편하다. 그러니 변덕 심한 세상 사람들의 기리고 헐뜯음에는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것이 못 된다. 나 자신에게 떳떳한지 돌아보는 일이 먼저다.

좋은 글을 쓰고, 본이 되는 삶을 살려면 어찌해야 하나? 제 이명에 현혹되지 않고, 내 코 고는 습관을 인정하면 된다. 남을 헐고 비방하는 것은 일종의 못된 버릇이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 못하는 것은 딱한 습성이다. 내 득실이 있을 뿐, 남의 훼예(毁譽)에 휘둘리면 못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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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족하다.

 글을 지으려 붓을 들기만 하면 옛말에 어떤 좋은 말이 있는가를 생각한다든가 억지로 경전의 그럴듯한 말을 뒤지면서 그 뜻을 빌려 와 근엄하게 꾸미고 매 글자마다 엄숙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은, 마치 화공을 불러 초상화를 그릴 때 용모를 싹 고치고서 화공 앞에 앉아 있는 자와 같다. 눈을 뜨고 있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으며 옷의 주름은 꽉 펴져 있어 평상시 모습과 너무도 다르니 아무리 뛰어난 화공인들 그 참모습을 그려 낼 수 있겠는가.

 글을 짓는 일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말이란 꼭 거창해야 하는건 아니다. 도는 아주 미세한 데서 나뉜다. 도에 합당하다면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인들 왜 버리겠는가. 이 때문에 도올(檮杌)이 비록 흉악한 짐승이지만 초나라에서는 그것을 자기 나라 역사책의 이름으로 삼았고, 무덤을 도굴하는 자는 흉악한 도적이지만 사마천과 반고는 이들을 자신의 역사책에서 언급했던 것이다.

 글을 짓는 건 진실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글을 잘 짓고 못 짓고는 자기한테 달렸고, 글을 칭찬하고 비판하고는 남의 소관이다. 이는 꼭 이명(耳鳴)이나 코골이와 같다.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갑자기 '왜앵'하고 귀가 울자 '와!'하고 좋아하면서 가만히 옆의 동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 이 소리 좀 들어봐! 내 귀에서 '왜앵'하는 소리가 난다. 피리를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생황을 부는 것 같기도 한데 소리가 동글동글한 게 꼭 별 같단다."

 그 동무가 자기 귀를 갖다 대 보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답답해 그만 소리를 지르며 남이 알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다.

 언젠가 어떤 시골 사람과 한 방에 잤는데 그는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그 소리는 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휘파람을 부는 것 같기도 하고,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숨 쉬는 것 같기도 하고, 푸우 하고 입으로 불을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보글보글 솥이 끓는 것 같기도 하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숨을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 같고, 숨을 내 쉴 땐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적 없소이다!"
 
 쯧쯧! 제 혼자 아는 게 있을 경우 남이 그걸 모르는 걸 걱정하고,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을 경우 남이 그걸 먼저 깨닫는 걸 싫어한다. 어찌 코와 귀에만 이런 병통이 있겠는가! 문장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하다. 이명은 병이건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니 병이 아닌 경우에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코를 고는 건 병이 아니건만 남이 흔들어 깨우면 골을 내니 병인 경우에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책의 독자가 이 책을 하찮은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처럼 여겨 버리지 않는다면 저 화공의 그림에서 흉악한 도적놈의 험상궂은 모습을 보게 되듯이 진실함을 볼 수 있으리니, 설사 이명은 듣지 못하더라도 나의 코골이를 일깨워 준다면 그것이 아마도 글쓴이의 본의(本意)일 것이다.


(박희병, 『연암을 읽는다』, 돌베개, pp.383~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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