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221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420

자유게시판

시조 선조와 족보 세보에 대한생각

페이지 정보

박창서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8 09:50 조회2,285회 댓글0건

본문



시조 선조와 족보 세보에 대한생각
 
보학 용어에서 시조:선조. 족보:세보에 대한생각을 말하고자 함은 제8차 족보를 편찬함에 우선 정립하여야할 과제가 시조 선조와 족보 세보에 대한 정의부터 확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확실해야 그 목적달성을 위한 방향을 알고 뛰어야 빨리 갈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아직도 시조 선조와 족보 세보에 대한 정의가 확실하고 모두가 인정하고 한길로 가고있지 못함이 안타깝다.
나는 보학 용어에서 시조:선조. 족보:세보에 대한생각을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자기주장만 할 뿐 남의 이야기는 들어주지도 않는다면 이 또한 안될 일이다.
"우리 先祖 表記 바르게 씁시다(판관공파 세우)" 라는 글을 보면  임오보서문(序文)을 인용하여 시조는 朴赫居世(박혁거세)이고 호장공은(應珠응주)선조라고 한다.
그러나 본문(本文)첫머리에는 나주박씨 족보요 시조 戶長公 朴應珠라고 되어있음은 무시해도 된다는 말인가?

                             1차 임오보 1642 문정공 미
download.php?grpid=p7Cn&fldid=6Khs&dataid=346&fileid=1&regdt=20070426151045&disk=32&grpcode=bannampark&dncnt=N&.jpg
download.php?grpid=p7Cn&fldid=6Khs&dataid=346&fileid=2&regdt=20070426151045&disk=17&grpcode=bannampark&dncnt=N&.jpg
서문의 기록은 역사적 사항을 설명 한 것이고 본문의 기록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주장하고싶다.

그러나 분명 박씨의 시조는 朴赫居世(박혁거세)이시고 반남박씨의 시조는 戶長公 朴應珠이시다.

""박씨들과의 대화에서는 그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우리 반남박씨 시조는…이라는 표현을 편의상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문서로 표기하거나 족보 같은 곳에서는 ‘시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절대 안될 것입니다.  만약 쓴다면 우리 선조님들의 인격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라는 표현에서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대화에서는 朴赫居世(박혁거세)를 박씨 시조라고 할 수 있겠으나 족보나 문서에서는 반남박씨 시조라고 확실히 표현한바 호장공을 반남박씨 시조 표시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 4월에 발행한 潘南朴氏 便覽(반남박씨 편람)에서 우리 '선조’를 시조로 표기한 것은 잘못입니다. 역사적 고증도 없이 함부로 바꾸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전해오는 우리 世譜의 전통과 가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분명히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언어(言語)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전통(傳統)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새로운 흐름은 나쁜 것이란 생각은 전통은 무조건 나쁘고 새로운 것은 무조건 좋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할 것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한다.
시대의 흐름을 알고 신속히 대처하는 것은 바른 삶으로 가는 방법일수가 있다.


 
""선조指稱(지칭)에 대한論難(논란)을止揚(지양)합시다 " 라는 글을 보면 나는 호장공을 선조로 주장하니 너는 가만히 있거라 하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 崇祖(숭조) 敦親(돈친)을 강조하였으며 종중회의 때마다 언필칭 숭조 돈친 이라  말하더군요. 구호로만 <숭조돈친> 하지말고 실천합시다
....선조님들의 주장 덕행을 계승하고 정해진 규례를 이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통은 무조건 지키는 것이 옳다는 전제 하에 문제를 보는 시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도 새로운 발전도 없을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은 변하면서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새로운 역사와 전통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과학문명이 날로 달라지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전통수호 만을 고집하거나 현실안주는 퇴보 일뿐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조 선조의 개념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始祖 (시조) 로 번복함이  불가한 이유는, 모든 박씨는 朴赫居世 (박혁거세) 란 엄연한 始祖 (시조) 가 계시므로""
박씨의 시조가 朴赫居世(박혁거세)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박씨시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묻는 말이 반남박씨 시조라고 할 때는 호장공이 반남박씨 시조라는 것입니다
.
 
"".이러한 수삼백년 시행해온 유래를 지금 와서 후손 된 자들이 고친다면  그러고도 崇祖 (숭조) 敦親 (돈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는 論難 (논란) 의 對象 (대상) 이 아닙니다. 이것을 종보에 등재하여 타 종파의 지탄을  받는 일이 없도록 논란을  지양합시다.""
그렇게도 논란의 대상이 두렵다면 위 글자체도  등재가 되지 말았어야합니다.
그러면서 대종중에서 열띤 토론으로  개념을 정립 했어야합니다.

내가 시조와 선조(始祖先祖)를 거론 할 때만 해도 벌써 과거가 되었습니다.
내 주장이 맞으니 너는 조용히 있으라는 논리는 안 되는 논리입니다.
누구나 수긍이간다면 자연히 새로운 개념으로 정립이 될 것입니다
.


"세보편찬에 동참합시다(도유사 준서)"로 하는 글에서 보면 족보라는 단어는 37회 사용 세보라는 단어는 4회사용 시조는 1번 사용 선조는 12회 사용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글제목이 ""세보편찬에 동참합시다" 라는 것인데 4:37로 족보의 사용빈도가 많습니다.
이는 세보 보다는 족보가 광의로 그리고 널리 사용하는 일반적인 개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조는1회를 사용하고 선조를 12회나 사용하였음은 진짜 시조를 표현 할 때만 시조를 사용하고 기타  할아버님을 말할 때는 선조로 표현함으로 봅니다. 
반남박씨의 진짜 시조와 선조를 구분하는 방편으로도 이제 시조는 호장공으로 지칭함에 이의가 업도록 할 것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우문현답[愚問賢答] 어리석은 물음에 현명한 대답이란 말과
賢問愚答[현문우답] 어진 물음에 대한 어리석은 대답(對答) 이란 말이 있다.

 
박씨시조는 누구이신가? 박혁거세이시다.
반남박씨 시조가 누구이신가? 호장공(휘 응주應珠)이시다.
시조가누구이신가 를 묻는 말이 분명하다면 그 답도 분명한 것이 아닌가?
묻는 말이 박씨 시조와 반남박씨 시조인바 왜 이를 구분할 줄 모른다는 말인가?
박씨시조가 반남박씨의 뿌리 인고로 반남박씨의 시조가 박혁거세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시조가 단군이시니 우는 모두의 시조는 단군이란 말인가? 
모든 성씨들이 본관시조를 모시고있다는 것은 잘못이란 말과 같다 할 것이다. 
우리의 첫 족보인  임오보의 족보 시조 표기를 보면 확실히 호장공이 시조이시며 족보도 세보가 아닌 족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2007.5.2
        http://cafe.daum.net/bannampark
              pcs13191@hanmail.net
                   카페지기 박창서

 

 

종사(宗事)는 정도(正道)로 가야!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도 말라 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어디 인생(人生)이 그렇게만 되는가?

인간은 사회적(社會的)동물인 관계로 서로간에 영향(影響)을 준다.
하물며 종친회[宗親會]이다 보니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있겠는가?
대종중 "세보게시판"이 신설되었습니다 에 기대하면서!

종사(宗事)에서 정도(正道)로 가는 길을 생각해 본다.
 
1. 첫째는 원리(原理)원칙(原則)존중(尊重)이다.
 나는 원리(原理)원칙(原則)을 좋아한다.
 그래서 원리원칙대로 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그런데 세상만사가 꼭 그렇게만 되지는 않는다.
 원칙보다는 융통성이란 편한 말로 대변되는 비 원칙이 성행하는 경우가 많다.
 적당히 와 융통성이란 말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적용대상이 만인(萬人)에게 적용될 때에 해당되는 말이다.
 나한테는 유리하고 남에게는 불리하게 적용되는 적당히 와 융통성은 안될 말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원리원칙, 적당히, 융통성이 적용되는 것을 존중하여야한다.

 이는 효율성제고(提高)이며 업무능률의 향상으로 목표에 빨리 도달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2. 둘째는 포용(包容)총화(總和)실천(實踐)이다.
   종친회(宗親會)라고 하는 것은 그 목적이 친목이며 불목이라면 그 존재가치를 상실한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종인 상호간에 포용으로 감싸 총화를 이루어 가야할 것이다.
포용이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감싸야하는 것이지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용서하고 감쌀 수는 없는 것이다.
포용으로 총화의 실천은 당연히 유 직책 자와 강한 자의 의무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3. 셋째는 충효청덕(忠孝淸德)정신으로 종중 발전이다.
우리 반남박씨의 정신은 충효청덕 이라 할 것이다.
선조님 들로부터 물려받은 충효청덕의 정신을 유지 계승발전 시킴은 후손 된 자의 의무라 할 것이다.
종사나 사회에서도 비굴하지 말고 정정당당한 정신자세로 정도(正道)를 가야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신원을 분명하게 하는 것도 정도로 가는 길이다. 


                         2007.5.11
        http://cafe.daum.net/bannampark
              pcs13191@hanmail.net
                   
세보편찬위원회
                   홍보위원 박창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