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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신씨 할머니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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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9-04 06:27 조회7,7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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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거창신씨 할머니 전설 " 여인(女人)은 시댁(媤宅)에 복(福)을 준다 "는 전설은 지금까지 흩어져있는 구전들을 모아 재 구성한것입니다. 다른 의견이 계시거나, 추가,삭제 수정 할 부분이 있으면 면락주십시요 여러분의 많은 고견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거창신씨(居昌愼氏) 할머니 전설

여인(女人)은 시댁(媤宅)에 복(福)을 준다.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고정리에 박산포지(朴山匏地)라고 일컬어지는 구릉 묘가 있었다. 이 묘는 지금부터 약 500 년 전에 반남박씨 집안과 혼인한 곽산군수(郭山郡守) 신여수(愼汝修) 딸의 무덤이다. 이 무덤의 음덕으로 반남박씨가 번성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선조(宣祖) 임금 때 서울에서 야천(朴沼)의 장자(長子)인 감정공 박응천((朴應川 1516 ~ 1581) 대감이 경상도(慶尙道)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제수 받아 거창(居昌)의 한 산골 길을 가마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해는 저무는데 갑작스럽게 가마채가 부러져서 더 이상 갈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박응천((朴應川) 대감은 근처 주막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다. 주막에서 자고 있는데 비몸사몽(非夢似夢)에 고은 색시 한 분이 나타나서 문밖에서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박응천((朴應川) 대감은 황당해서 큰소리로 “왜 당신이 나에게 큰절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 색시는 “나는 당신하고 인연(因緣)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고 사라졌다. 이상한 꿈이어서 그 이튿날 아침에 주막집 주인 노파에게 지난밤 꿈 이야기를 했다.

그 노파가 하는 말이 대감의 가마채가 부러진 그곳이 옛날에 거창신씨 처녀가 합천에 사는 박씨하고 약혼을 맺었는데 박씨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가세가 힘들게 되어 어머니를 따라 형제들과 함께 고향 한양으로 올라가 공부하며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키고 덕을 택하고 은혜 갚기에 전념하는 동안, 한양으로 올라간 박씨에게 그 후 소식이 없자 신씨 처녀는 친정에서 홀로 살다가 죽었는데 친정에서 그곳에 묻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처녀나 총각이 죽으면 한 길가에 묻었다고 한다.

감정공 박응천((朴應川) 대감이 어릴 적을 생각하니 약 14살 때쯤 아버지(야천공)를 따라 경남 합천에 내려와 20세 이후까지 살 때 자신의 이야기였다. 박응천((朴應川) 대감은 합천을 떠난 지 40~50 여 년 만에 이곳 대구부사로 부임하면서 이곳을 찾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묘역 근처를 정비하고 묘를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해마다 제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후 10년쯤 지나서 반남박씨 집안이 번창하기 시작하여, 박씨 집안에서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으나 조상 묘의 발복 말고는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없어, 유명한 지관을 불러 어느 묘의 발복으로 집안이 번창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았는데 신씨 며느리 묘지의 발복으로 박씨 집안이 번창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박응천((朴應川)의 5대손으로 대사헌과 도승지를 지낸 박필명(朴弼明 1658∼1716)이 신씨 묘 앞에 표석(表石)을 해 놓았다.

죽은 신씨가 비록 박씨 집안에서 살지 않았고 자손도 없지만 일단 박씨와 약혼을 한 관계로 박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씨 성을 가진 여인이지만 박씨의 조상으로 박씨 후손들에게 발복했다고 한다.

박씨들은 그 후 정성껏 묘소를 돌보니 반남박씨 집은 더욱 번영해서 그 자손 가운데 조정에 출사하여 높은 벼슬을 지낸 대신이 많이 나왔다.

한편 신씨 집안은 명당자리에 박씨 집안으로 출가한 여식을 장사 지냄으로 인해 자기들 차지가 될 묘지를 박씨 집에 빼앗겼기 때문에 가문이 번영할 기회를 놓쳤다고 전하고 있다.

거창지방에서는 반남박씨를 한양박씨라고도 하는데 반남박씨 집안에서는 정초(正初)에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가면 “꿈에 거창신씨 할머니를 보았느냐”는 덕담(德談)을 했다고 한다.

꿈에 신씨 할머니만 보면 벼슬을 했다고 하는 구전(口傳)이 거창지방에 전하고 있다. 신씨묘가 있는 이 산을 박산(朴山) 이라고 하고 이 명당을 마른 나무에 꽃이 피고, 곤궁한 처지의 사람이 행운을 만나 신기하게도 잘 됨을 뜻하는 고목생화(枯木生花)라 한다.

한편 반남박씨 문중은 경남 거창군 고정리에 있는 증(贈) 정경부인(貞敬夫人) 거창신씨 묘를

1989년 9월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감정공 박응천((朴應川) 묘서(墓西)에 면봉 하고

증(贈)정경부인(貞敬夫人) 거창신씨의 음덕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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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증 정경부인 거창신씨 부 곽산군수 汝修 조 현령 成終

계 증 정경부인 순천김씨 부 증 참의 희려 조 현감 若枰

公先娶申氏(공은 먼저 신씨의 여를 취했으나) 무자하고 뒤에는 별좌 김희려의 여를 취하니 덕성이 지순하여

감정공 휘 응천

(묘갈명 이항복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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