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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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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10-03 00:43 조회6,258회 댓글0건

본문

   박죽서(朴竹西)  ?~1845
 
순조~헌종 연간에 활동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으로 원주출신이다.
본관은 반남, 호는 죽서 또는 반아당이다.
죽서(竹西)는 자신의 서재 명칭이며, 반아당은 반벙어리라는 의미의 겸칭이다.
선비 종언(宗彦)의 서녀로 태어나 부사 서기보(徐箕輔)의 부실이 되었다. 대략 30세를 전후한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으며, 특히, 암기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한번은 아버지가 공부하는 서책의
내용을 죄다 암송하여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성장해서는 소학(小學), 경서(經書), 고시(古詩)를 섭렵하는
한편, 부덕의 배양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10세를 전후한 시기에 천재적인 문학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현재 죽서시집(竹西詩集)에는 10세의 작품으로 전하는 오언시가 수록되어 있어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녀의 시문은 법고적인 성향이 강하면서도 솔직담박하여 꾸밈이 없었다.
여성 특유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여 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여자로서의 한을 섬세하게 묘사한것이 특징
이다.
 
그녀와 교유한 대표적인 여류시인은 같은 원주출신인 김금원(金錦園)이었다. 두사람은 고향도 같았지만 부실
이라는 점에서 처지도 유사했다. 여기에 문학적인 취향까지도 일치됨으로서 절친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다
 
김금원은 죽서시집 발문에서  만약 죽서와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형제가 아니면 붕우였을 것이다 고 표현
할 정도였다.  이런 선상에서 박씨는 김금원이 결성한  삼호정시단(三湖亭詩壇) 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역시
여류시인이던 김운초(金雲楚), 경산(瓊山), 경춘(瓊春)과 더불어 왕성하게 활동하다 1845년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박씨의 시문은 1851년(철종2) 죽서시집으로 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주교육청(교육장 이봉수)은  원주를 빛낸 1월 인물 로 조선후기의 여류시인 박죽서(사진) 씨를 선정했다.


박죽서.jpg

박죽서(朴竹西)
 

模春書懷(모춘서회) / 朴竹西(박죽서)


睡餘散步小牆東(수여산보소장동)

樹色蒼然望更空(수색창연망갱공)

閉戶春歸山影外(폐호춘귀산영외)

隔簾鶯語夕陽中(격렴앵어석양중)

王孫芳草年年雨(오아손방초년년우)

蜀魄殘花夜夜風(촉백잔화야야풍)

流水光陰人欲老(유수광음인욕로)

回尋前事竟無窮(회심전사경무궁)



잠 깨어 작은 울타리 밖 거닐다가

푸르른 나무 위로 파란 하늘 보았지

문을 닫아 봄은 산 그림자 밖으로 가버렸는데

발 너머 꾀꼬리는 노을 속에 우짖는다

님과 노닐던 풀밭에 해마다 비가 내리고

남은 두견화엔 밤마다 바람이 부는구나

흐르는 세월 속에 사람은 늙어만 가는데

옛일 더듬어보니 추억은 끝없이 이어지네


섣달 그믐날

無 情 又 遣 今 年 去 (무정우견 금년거)

有 力 難 回 此 夜 窮 (유력난회 금야궁)

萬 古 消 磨 應 是 夢 (만고소마 응시몽)

人 生 老 在 不 知 中 (인생노재 부지중)


무정한 세월 또 한해를 이렇게 보내는구나

아무리 힘이 있은들 이밤이 가는 것을 막을 수야 있겠는가

만고에 쌓인 시름 모두가 꿈인 것을

인생은 그 속에서 절로절로 늙어만 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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