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득관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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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8 10:38 조회1,638회 댓글0건본문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하여>
우리 반남박씨가 "반남"이라는 본관(本貫)을 얻게 된 내력
고려 제31대왕 공민왕 때에 각 성씨들이 본관을 정하게 되었다. 그 당시 박(朴)씨 성을 쓰셨던 "수(秀)"라는 분께서 자신의 본관을 정하기 위해서 윗대 어른들을 찾았는데 아버지 "윤무", 할아버지 "의", 그리고 증조할아버지 "응주"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었다.(고조할아버지 이상의 윗대는 찾지 못하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 "수"께서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이신 "응주"께서 고려 21대왕 희종 때에 태어나셔서 반남(潘南)(지명)이라는 현(縣)(고을)에 사시면서 고려 23대왕 고종 때에 호장(戶長)(지방행정관)이라는 벼슬을 지내신 것을 알아내셨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수"께서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이신 "응주"를 시조로 모시기로 하고, 시조이신 증조할아버지 "응주"께서 태어나셔서 자라나신 곳의 지명인 "반남"을 본관으로 정하셨다. 이것이 바로 고려 31대왕 공민왕 22년(계축년) 호적이 되었는데 우리가 "반남"이라는 본관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여기에 연유한다. (그리하여 휘 응주(호장공)께서 시조1세가 되시고, 휘 의(급제공)께서 2세, 휘 윤무(진사공)께서 3세가 되시며 휘 수(밀직공)께서는 4세가 되심.) 그 이후 우리 반남박씨는 대대손손 서로 이어져 수많은 자손들과 가문의 겨레붙이들이 번창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참고: 이름 앞에 "휘(諱)"라고 쓰는 것은 돌아가신 어른의 함자(이름)를 그냥 쓰지 않는 예법에 따른 것입니다. 돌아가신 어른의 함자(이름)를 함부로 부르게 되어 민망하고 송구스럽다(꺼리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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