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페이지 정보
본문
민우 종인께서 <백자묘지>를 게시판에 올려 도움을 요청하시는 글이 올라온지 한참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제가 감히 천학을 무릅쓰고 나름대로 살핀 것을 올려 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자묘지>를 보신 분들은 부분적으로 이미 그 내용을 알고 계셨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민우 종인께서 올려 놓으신 <백자묘지>를 보다가 저도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직계 후손들의 당혹감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뭔가 잘못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전문가에게 문의를 해 보았더니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민우 종인께서 말씀하신대로 묘지를 지은 최숙생의 위상이나 부탁한 박수연(공순공의 외손자)의 위치를 생각할 때 착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당시 참봉이었던 공순공의 외손자 박수연이 자신의 生외조모를 착각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세보의 기록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순공의 초배위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미 암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공순공의 초배위가 밀양박씨라는 정보는 종중 내부의 자료, 또는 후손들의 직접 기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산송씨 족보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온 것임을 세보에서 이미 밝히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순공의 배위에 관한 기록은 정확한 것이 아님을 세보 자체에서 밝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종중에서 별 의심 없이 앞에 나오는 배위 기록만 믿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100% 명확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운봉현감을 지낸 황맹수의 계보도 당연히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여산송씨(礪山宋氏) 족보도 확인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여산송씨 가문에서 무슨 근거로 이런 기록을 남겼는지 일단 확인해 보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족보의 기록들이 늘 정확한 것만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다음으로, 밀양박씨 족보도 확인해 보시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세보에 나오는 밀양박씨는 세종 때 음악인으로 이름을 날려 중고등학교 국사책에 등장하는 박연(朴堧)의 손녀입니다. 난계(蘭溪) 박연(朴堧: 1378-1458)은 워낙 유명한 인물이므로 밀양박씨 종중에 연락하면 쉽게 확인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 박연의 배위가 여산송씨라고 합니다).
확인 작업이 아주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보이므로 곧 100% 확실한 결과를 얻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