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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한자의 조언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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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민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3-01 00:10 조회3,557회 댓글0건

본문

공순공 할아버지의 백자음각묘지명의 번역을 거의 마쳤읍니다.
번역을 나름 완료 했으나 확실치 않은 한자가 있어 급하게 종친 어르신들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첨부한 사진의 첫자가 무슨 자인지 명확치 않아서요



원본 사진은 파일 첨부해서 올리니 다운 받아 보시면 될듯 합니다.

판독부분은

公凡三娶初室雲峯縣監黃孟粹之女生

五子女餘
先公無子逝女三適前司評

朴思謙生子女五子二女三
二室昌平縣令

李敍疇之女無子三室結城縣監鄭孟孫


女有一子幼名照將以十月十五日窆于廣

州北面古多只地
公居處恭無妾媵不飮

酒治家儉約持身拈靜自小好左氏
至者

猶誦之嘗謂人曰讀史復如親遇其時治亂

保失之際
思所應之公可謂知言矣公

之兄故敦寧府

공은 대체로 세 번 장가를 들었으니, 초실(初室)은 운봉현감 황맹수

(黃孟粹)의 여식이니,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았고, 나머지 은 자식

이 없이 졸(卒)하였다
. 세 번째 여식은 전사평(前司評) 박사겸(朴

思謙)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과 딸 셋을 낳았다. 이실(二室)은 창평현

령(昌平縣令) 이서주(李敍疇)의 여식이니, 무자(無子)이고, 삼실(三

室)은 결성현감(結成縣監) 정맹손(鄭孟孫)의 여식이니,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어리고 이름은 조(照)니, 10월 15일에 광주(廣州) 북면(北

面) 고다지지(古多只地)에 묻으려고 하니 공이 살던 곳이다. 공은 첩

잉(妾媵)이 없었고,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집을 다스림은 검약(儉約)

함으로 하였고, 몸을 보지(保持)함은 고요함으로 하였으며, 어려서

부터 좌씨전(左氏傳)을 좋아하여 지극한 곳에 이르면 오히려 외웠

고, 일찍이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사서(史書)를 읽기를 친구같

이 해야 하니, 그 당시 난리를 다스림을 만나서 득실(得失)이 있을 때

는 응당 생각하여 응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니, 공은 말

할 줄을 안다 이를 것이다. 공의 형인 돌아가신 돈녕부  -----

입니다.

문제는 파란색 네모에 들어가는 한자가 명확치 않아서 도움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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