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71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370

자유게시판

족보의 오류

페이지 정보

no_profile 박한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4-08 20:08 조회3,412회 댓글0건

본문

潘南朴氏 大同譜 編纂委員會 委員任들께.

어제 새로 발행되는 족보의 교정본중의 上係偏을 읽고

느낀바가 있어 이 글을 씁니다.

이미 찬이 족숙께서 문제점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지적하셨기 때문에,

다시 장황하게 문제된 부분을 설명하지 않아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거기다 덧붙여 이야기 하자면, 전에 제가 이의를 하며 항의를 하였던

활당공댁의 부당한 끼워 넣기 수단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그 수단은 수정되거나 취소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저는 한마디 하지 않고 넘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한 계파의 문제이기 전에, 반남박씨 전체의 문제이고,

派譜라면 모를까 大同譜이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은 지금 당대의 문제만이 아니고, 먼 후세에 까지 영향을 끼칠 중대한 역사적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윗대 조상님들이 심혈을 기울여 조사하고 기록한 사실을 무시하여 우습게 알고,

자신의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잘난 양 하는 몇몇 분들의 거드름이

문제의 발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노력과 비싼 경비를 들여 만든 족보가 오류투성이가 되고,

그것을 구입하여 후세에 전하여야 하는가를 생각을 하면,

작금의 이 상황을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여야 하나요?

우리 반남박씨 문중의 가르침은 崇祖와 敦族으로 알고 있습니다.

崇祖를 根本으로하여 효와 우애와 수신과 제가를 배웠고,

敦族을 末로하여 이웃과 친척과의 화목는 가르침을 배웠읍니다.

그런데 족보를 엮으면서, 末을 중시하여 本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현재의 후손들의 주장을 들어주다보니,

옛 선조님들의 기록을 뒤집어 버리고서 부인하고 만 사태가 된 것은,

무슨 근거에 의한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역사적 근거가 아니면, 옛 기록은 글자한자라도 함부로 바꿀 수가 없는 것인데,

후손들의 주장이라고 쉽게 기록을 바꾸어 준다면, 그게 어디 역사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이러한 것을 보고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올바른 후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그 잘못된 기록을 용인함으로 동조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었입니까.

내 일이 아니고 나에게 손해가 없다면 참아 넘기라는 분들도 계심에

한심스러웠고 울분을 느껴 왔지만, '이것은 아니다' 싶어 또 한자의 글을 올리니,

이런 부당한 기록들과 수단을 심사하여 통과시켜 채택한 분들은 대답이 있으셔야 할 것입니다.

이하의 글은 壬午譜(1642年)(榮州 板刻本)에 있는 朴 詰 先祖의 原文기록임.

朴詰 居 錦山, 子 沖 文科, 子 麟 君守,

辛巳(1641年)夏,錦山居生員朴琴氏,複書略曰,慈邑兵燒,比他充甚,譜牒盡爲O失,

只聞졈先世父兄者聚以記得, 則自朴允茂分派之言, 則歷歷皆記而,

茂祖以下,詰祖以上,代數一不記,得亦無考廈云云,

察念十一代祖進士公諱允茂,子密職副使公諱秀有兄弟,

則朴詰氏必是密職公兄弟之子孫無O以,

密職公若無兄弟如譜中O錄則無乃密職公第三子直長尙경之後耶,皆未可知也,

密職公之孫平度公諱은字位言O而,詰字亦後言邊則百世之下,雖未能的知其從慕派今來而,

傍考朴詰氏曾孫壻金九英登第時(1453年)歲月其與,平度公堂兄弟或再從兄弟,以亦元O

古謹依竹溪安氏族譜中,安碩例詰字之上不書,子字而別以朴詰姓名二字付書子,

柳伯濡之外平度公行以侯他,日之參考焉.

나는 한자 실력이 짧고, 배운바 없어 몇 자는 옮겨 적을만한 실력이 아니기에 빼 놓았습니다.

이나마도 모르는 글자는 옥편을 보면서 옮겨 적었으니, 빈 칸은 임오보를 보시고 채워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하여서 죄송하오나 답답하여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기에 꾸중을 각오하고 몇 자 적었습니다.

2012년. 3월 끝머리에, 평택에서 박한우 恭手.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