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80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379

자유게시판

招魂禮葬(초혼예장)

페이지 정보

no_profile 박동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4-11 08:47 조회3,866회 댓글0건

본문


招魂禮葬

(금년에 윤3월이 들어서  실전된 조상의  神體를 묘소(납골당) 에 모시고 제사를 올리고져 하여 많은 분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儒敎禮法에 正禮가 아니므로 그 절차나 축문 사례는 禮書에서  찿지 못하였으나 아래 사례들을 소개하오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

초혼예장이란 고인이 전쟁 중에 행방불명이 되었거나 사고 등으로 시신을 찾지 못했을 때, 후손들이 고인이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고 지내는 장례이다.

비록 시신이 없는 장례식이지만, 그 때도 일반 장례와 같은 절차로 진행하고, 봉분(무덤)을 만들기도 한다.招魂禮葬(초혼예장)의 뜻을 굳이 풀이한다면 이런 의미가 될 것이다.

비록 이곳에 시신은 모시지 못하나 혼령을 초대합니다.(招魂),
정성을 다해서 예로서 모시겠습니다.(禮葬)

후손들이 명당을 찾아 선대의 묘소를 이장을 할 때 고인이 돌아가신지 오래되어서 봉분을 찾지 못했을 경우에도 이 용어를 쓰기도 한다.

이 때 역시 시신은 오지 못하더라도 혼만은 이곳에 머물러 달라는 후손들의 소망을 담은 용어이다.

이 말이 활용된 실례로 진주0씨 하촌 선영 비문(晉州0氏 下村 先塋 碑文)의 내용을 살펴보겠다.

丁亥 청명절에 후손의 정성으로 통덕랑 진인공 諱 0은 초혼예장(招魂禮葬)으로, 配位 烈婦恭人 仁川 0氏는 咸安 군북명관에서 移葬하였고, 실전된 子 芽生公 휘 00과 배위 밀양0씨도 초혼예장(招魂禮葬)하였다.

-정해년 청명절에 후손들이 정성을 기울여서 통덕랑 진인공 (휘 0)은 초혼예장으로 모셨고, 배위인 열녀 공인 인천0씨의 시신은 함안군 군북명북에서 이장하였으며, 무덤을 알지 못하는 아드님 아생공(諱 0과) 며느님 밀양0씨도 초혼예장으로 모셨다.- [naver,에서]

(박동일 조사정리)

 1,사례 ≪60년 만에 초혼 예장(招魂禮葬) ≫

60년 만에 초혼 예장(招魂禮葬)

2010년 07월 15일(목) 15:20 [군위신문]

지난 7월 10일, 군위읍 대흥2리(농바우)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눈물바다가 있었다.

이 마을에 살다가 일찍이 출향한 이상기씨(50세, 회사원, 입양장)와 그의 누나 이규환 여사(60세, 대구 대보한의원 원장, 유복녀) 남매가 6.25전란 때 서울에서 공산군에게 끌려간 아버지(이병옥, 당시 25세, 은행원)의 소식을 60년간이나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고, 시름에 잠기고 기다림에 지친 어머니(사공 주, 83세)마저 이 세상을 떠나시니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구천에 떠돌고 있는 아버지의 혼령을 불러 고향 땅 대흥리의 선영(先塋) 아래 부모님을 합장하였는데, 그 때 읽는 초혼사(招魂辭)를 들은 유가족은 물론이요, 친인척과 마을의 문상객 모두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초혼사(招魂辭)

 유세차(維歲次)경인(庚寅)5월임오(壬午)삭(朔)29일신유(辛酉)

불초소자(不肖小子) 상기(湘基)가 우리 아버지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에게 고유(告由)합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시옵니까?

저의들 두 남매(男妹)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아직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뵙지도 못하였고, 아버지의 음성(音聲)을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6.25가 그렇게도 무섭고 혼란스러운 전쟁(戰爭)이였습니까?

 빨갱이가 그렇게도 무섭고 모진 귀신(鬼神)이였습니까?

그 난리 중에 아버지가 끌려가시고 어느덧 6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歲月)이 흘러갔습니다.

행여나 돌아오실까? 행여나 소식(消息)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날이 세면 날마다, 밤이 되면 밤마다 기다리고 기다린 지가 햇수로는 60년, 날수로는 2만 천 7백일이 넘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어머님은 그것이 병(病)이 되어 철없는 저희 남매를 남겨둔 채 한(恨)많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 둘이 남은 저희들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보고 싶은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불러보지도 못하고 오늘까지 왔습니다.

정녕(丁寧), 이 세상에는 계시지 않습니까? 아버지!, 혼령(魂靈)이라도 계시거든 한번만이라도 대답을 해주십시오.

 아버지, 하늘도 무심(無心)하고, 세월(歲月)도 무정(無情)합니다.

철없이 자란 불효(不孝) 막심(莫甚)한 소생(小生)들, 이제야 아버지의 혼령(魂靈)을 모시고자 박주(薄酒) 한 잔 부어 놓고 두 손 모아 간청(懇請)하오니, 그동안에 지은 저희들의 불효를 용서(容恕)하시고 이곳에 강림(降臨)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출생(出生)하시고, 생장(生長)하신 고향 땅,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옆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택(幽宅)을 마련하여 모시고자 합니다.

 지금 곧 망망무애(茫茫無涯) 구천(九天)에서 내려오시어 저희들이 마련한 유택(幽宅)에서 어머님과 함께 천년만년(千年萬年) 영세무궁(永世無窮) 편안히 지내시기를 엎드려 비옵니다.

끝으로 한 번 더 아버지를 불려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자료제공 : 사공희 씨·전 교육장 교원출신>

2,사례,≪晉州姜氏 下村 先塋 碑文 ≫

晉州姜氏 下村 先塋 碑文

 옛 地名 冬勿谷 드무실 곳곳에는 四世紀 동안 姜門에 通德郞 晉仁公 諱   후예들의 얼이 스미고 先代 유적에 下村 根幹의 入鄕祖는 勿溪公 諱 仁起이시며 그 根源은 晉仁公이시다.

 姜姓의 始祖는 中國 上古時代 三皇의 한사람인 神農氏이고 먼 後代 太公望을 이어 晉州姜氏의 始祖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姜以式 將軍이시다.

 中始祖는 고려 문과 국자박사 諱 啓庸을 박사공파 一世로 하여 文武大姓의 世系를 이루니 진인공이 그 十一世孫이며 창령공 휘 友德의 증손이 된다.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계승은 世世孫孫의 도리이나 失傳은 질곡의 세월 탓이러니 조상의 족적이 萬古不朽하고 숭조사상의 근본이 숨쉬는 정려각과 함께하는 吉地를 택하여 진인공에 근원을 삼고자 함은 인륜에 참된 理致다.

 뜻있는 賢宗과 丙戌 二月 先塋地를 조성하면서 坐向은 乾坐 巽向으로 하였다. 이듬해 丁亥 청명절에 후손의 정성으로 통덕랑 진인공 諱  은 초혼예장으로 配位 烈婦恭人 仁川 李氏는 咸安 군북명관에서 移葬하였고 실전된 子 芽生公 휘 수담과 배위 밀양박씨도 招魂禮葬하였다. 孫 물계공 휘 仁起는 中村 大 골 坤坐에서 이장하면서 床石은 매안하였고 配位 全州李氏는 진주 말티고개 庚坐에서 移葬하였다.

 이곳 先山에 各位 쌍분 고유안장하였으니 천지신명은 선령을 통찰하시여 진토의 넋이라도 樂而不散되게 하소서. 후손된 者 마땅히 선영과 旌閭閣 보살핌에 禮와 誠을 다할지어다.

檀紀 四三四O年 丁亥 陰 二月 十八日 立

晉仁公 十五世孫 大吉 삼가지음

3,사례,≪의송≫

한자議送국적/시대한국(韓國)-조선(朝鮮)재질지(紙)크기98×62cm소장기관국립중앙박물관유물번호구(購)-001674-000경신년(庚申年) 7월에 전라도 구례현(求禮縣)에 사는 유학(幼學) 김영조(金英祚)가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소장(訴狀)이다. 전주에 사는 홍종명(洪鍾命)과 나주에 사는 김치휘(金致輝) 등이 조상인 충의공(忠毅公)의 초혼예장(招魂禮葬)을 구실로 자신에게 토색질을 하려 하니 이들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만약 침해하는 단서가 있으면 즉시 이들을 압송할 것″이라는 구례 현감의 답글[題辭]과 함께, 관찰사의 수결(手決: 서명)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다.

◎= (대체로) 단을 모신 후 고사를 올리고, 산신제를 드리면 될 것입니다.

[먼저 先塋에 고하는 의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設壇 祝文

維 歲次干支 幾月干支朔 幾日干支 後孫(幾代孫) 某 某敢昭告于

顯幾代祖考 某官府君 今爲設壇 伏惟 尊靈庶幾降臨 謹以 酒果用伸 虔告謹告

●設壇 後 山神祭 祝文

維 歲次干支 幾月干支朔 幾日干支 某官姓名 敢昭告于

土地之神 某官姓名 幾代祖考 某官府君 今爲設壇 神其保佑 俾無後艱 謹以

淸酌脯醢 祗薦于神 尙饗

4, 사례, ≪이메일 질문과 답변≫,

招魂禮葬 ; (초암선생님 의 지도를 바랍니다)

오는 3월에 윤달이 돌아와 先代에 失傳한 先祖님을 招魂禮葬 하여

納骨堂(墓)에 모시고 祭祀를 지내고저 합니다

1, 어떠한 절차로 해야 하는지요?

2, 納骨函 안에 써서 넣을 神體의 文案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요?

例을들면 -- 00박공 00 神位

00박공 00 (이름만 쓰는 경우)

00박공 00 之魄

00박공 00 之柩

00박공 00 之靈

(위와 같이 구구한 설이 많습니다 적합한 안을 몰라서입니다)

3, 안치후에 고유문은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요?,

(고유문의 사례나 문안도 좀 알려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연천에서 박동일 올림,

첨부파일보기 보낸사람 : 전계현 12.04.10

아래와 같이 불가의 입탑(납골함)예법이 있으나 이에서도 그에 대한 축식이나 예법이 자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불가 예법에도 없는것 같습니다.

특히 유가에서는 초혼장이 비례라 하였으니 그에 대한 예법은 더욱없습니다.

다만 후손으로써 효와 의리로서 無尸柩 先祖가 親盡이 되면 神祭는 폐하게 되니 잊지 않기 위하여 歲一祭로 모실 근거를 득하기 위하여 虛葬의 하나로 招魂하여 納骨函을 堂에 모시고자 하심인데 율곡,사계,구봉,선유께서도 초혼장은 비례라 하셨을 뿐인데 하물며 감히 본인이 운운할 수 없으며 더욱이 그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전무합니다.

釋門家禮抄立塔條梵語塔婆此云高現又云墳或云浮屠此云聚相傳云作俱羅皆疊塼石爲之形如小塔上(云云)有德望者皆應立塔

朱子曰招魂葬非禮先儒已論之矣

通典亡失尸柩服議劉智云訖葬而變寒暑一周正服之終也開元禮云亡失尸柩則變除如常禮

問招魂葬栗谷曰死於軍或沒於水不得其尸則以服招魂而葬其服肰非禮矣

牛溪問隣有溺死不得其屍其子欲招魂爲墓於義理如何龜峯曰墓只是葬骵魄旣不得其屍則不墓似合惟魂無所間爲主以祭爲得義理之當

●問人死不得其屍體者聖賢立言何無處此之道耶或招魂葬或遺衣葬在禮何所據耶沙溪曰虛葬之非先儒已言之何謂無處此之道乎 -END-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