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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묵묵부답에 대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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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한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5-03 00:14 조회3,280회 댓글0건

본문

默默不答의 論爭에 관한 答辯.

엊그제 홈페이지를 열어보고는 며칠 동안 논란의 말씀들이 있으셨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저 한우의 당돌하고 예의 바르지 못한 발언 때문이 아닌가 하여 송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논쟁의 발단이 당사자가 아니며,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萬春氏가 단초를 열었다는 것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의 조금은 무식하고 버릇없는 거친 말은, 누구라는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족보편찬 위원회나

수단 심사위원들을 향한 것입니다.

즉 잘못된 심사로 인하여 올바르지 못한 기록과, 가공인물(선조?)을 만들면서까지

무리하게 조작한 수단을 받아 기록하는 행위가 일어났기 때문에,

시정하여 달라는 항의를 하면서 재 심사서류를 제출하여도 거부하면서 받아주지를 않더니

결국에는 고쳐지지 않으므로, 분노의 부르짖음처럼 거친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책임 있는 분이 무슨 말씀이 있을 거라고 한 가닥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거칠고 버릇없는 말에, 꾸중이던 야단이던 작은 몸짓이라도 있을 줄 알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하였는데,

뜻밖에 萬春氏가 나서서 꾸지람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개인적으로 만나 꾸짖으셨다면 반발을 하였을 줄도 모르겠으나, 공개적인 야단을 맞으니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만춘씨는 족보편찬위원회 서무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저 한우가 무슨 일로 대종중의 사무실을 시끄럽게 하면서 편찬위원들과 다투는지를

정확하게는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 문파의 치부이면서, 또한 반남박씨 족보편찬위원들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조용히 처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끝끝내 고치지 않은 채 인쇄과정에 들어 간 것을 보면서 일말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창서대부께서 저의 글에 댓글을 달으시기를

저 한우가 족보의 오류를 시정하여 달라고 요구하였던 곳은 수정되었으니

다시 살펴보라고 하여서, 홈페이지에 올라온 활당공파의 교정본을 다시 열어 보았으나,

오류라고 지적한 어느 곳도 고처 지고 수정된 곳이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제가 收單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곳은 세 곳이었는데, 한 곳도 고치거나 빼내지 않았으며;

(활당공파 교정본의 복사본을 한 벌 가지고 있어서 확인하여 알고 썼던 글이었습니다).....

우리 활당공파의 收單 내용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아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나,

그 세 곳이 오류이며 잘못된 수단인 것은, 우리 활당공파 문중에서도 극소수 宗員만 아는 사실로서,

저 한우는 처음부터 그 수단은 받아 드릴 수 없음을 알기에 극력 반대하였던 것이고,

수단서를 제출하였던 본인들도, 처음에는 저의 명확하고 확고한 거부에 순순히 수긍하고는,

(활당공파 셋째집의 종손인 관계로 셋째집의 내력은 제일 잘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별단으로라도 받아 달라"고 하였는데,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수단이 활당공파 수단위원의 도장도 없이 다른 분의 서명날인으로 받아드려졌고,

버젓이 후손이 없으신 윗대 분들의 자손으로 등재되어 소위 끼워 넣기에 성공하였으니

제가 거친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창서대부님이 저의 글에 댓글을 달으셔서 고처서 수정된 것 같으니

다시 살펴보라고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잘못알고 계시다고 말씀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어느 派나 門中의 일은, 그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비록 족보 수단 심사위원들도, 타 문중이나 문파의 일은 알 수가 없을 것이며,

다만 근거서류를 제출할 때, 그 서류의 진위여부를 판가름 하거나,

수정하여 달라는 소문중의 요구가 타당한 것인지만 심사가 가능하지,

어느 수단 요구자가 신규로 그 문중에 입보하고자 하여 요구하여 왔을 때는,

그 문중의 판정이 우선시 되며,

같은 門派 內에서도, 그 事案에 해당되는 門中의 의견이 우선시 되는 것이 합당한 일처리인데,

이번의 저희 활당공파의 안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불행히도 본 문중을 배제하고 처리한 일로서,

우리 문중의 수단위원을 제치고 마음대로 수단을 접수하여 처리한 책임자는 누구이며,

또 우리 문중도 모르게, 문중의 종인이라고 심사하여 받아드린 심사위원은 누구입니까.

저 한우는 조용히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끝내 고처 지거나 수정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미 이 일과 관련되어 저와 언쟁을 하셨던 한 분과

저를 도와 같이 애쓰시던 한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가슴이 아픕니다.

지극히 공적인 일로 서로 의견을 달리 하였고 서로 간에 사적인 감정은 없었으나,

지극하고 자애롭던 감정에 조그마한 틈새가 생겼었던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하여 보면 지극한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아집에 의한 분열과 불신을 가져오게 한 결과에 이르게 하였는지,

족보편찬위원들과 심사위원들은 대답하여 주심을 간절히 바라왔으나

그분들은 끝끝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말았습니다.

그 어른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글씨를 한 점 써주시면서,

이 후에라도 서로의 신뢰와 사랑을 잃지 말고 인내하며 화합하여

문중의 앞일에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말씀을 하였는데

그날의 만남이 마지막 이였음을, 그 때는 알지 못하였으니

사람은 한치 앞을 내다볼지 모른다는 옛 말씀이 틀리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오늘을 반성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족보편찬 심사위원들이 자신이 내린 판정을 가볍게 뒤집고도 한마디의 해명도 없음에

지극한 유감을 다시 한 번 토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그곳을 열거하여 논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제 자신이 이미 병들어 밖을 다니기가 어렵고 힘겨워 실내에서만 생활하다시피 하며 살아가면서

대종중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분규를 좋아 하듯이 떠들기가 싫고,

이미 막바지에 이르는 족보 편찬을 더는 저지할 힘이 없으니, 묵묵히 바라보고 있으렵니다.

다만 유감은 표시하여 두는 것이 후일을 위하여 필요한 것 같기에 기록하여 두는 것입니다.

2012년. 5월의 초입에. 평택 寓居에서 漢雨 恭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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