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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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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태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5-29 09:05 조회3,779회 댓글0건

본문

박지원

조선 최고의 문장가 한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연암 박지원을 꼽을 것이다. 8촌 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를 다녀와서 쓴 『열하일기』는 그야말로 박지원의 종횡무진하는 사유와 번뜩이는 안목을 만끽할 수 있는 명문장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박지원의 특장은 아무래도 이런 산문 분야이겠지만, 시에도 뛰어난 대 문장가였다. 그 가운데 돌아가신 형을 그리며 쓴 다음 시는 지금 읽어보아도 가슴이 짠해진다.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 我兄顔髮曾誰似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 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 / 今日思兄何處見

두건 쓰고 옷 입고 나가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 / 自將巾袂映溪行

정조 11년(1787), 58세로 죽은 형 박희원을 생각하며 지은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그리다[燕巖憶先兄]>라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얼굴 모습과 수염을 꼭 닮아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형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1ㆍ2구. 하지만 그 형님마저 이젠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주던 형님이 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연암 골짜기로 몸을 피해있던 박지원은, 그런 형님이 문득 그리워졌다. 이제 형님의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볼 것인가? 형님과 자신이 닮았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래서 의관을 정제하고 시냇가로 나가 흐르는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형님의 자취를 찾아본다는 3ㆍ4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형과 아우로 이어지는 끈끈한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혈육이라고 하는 것이 뭐기에, 그리도 생김새조차 쏙 빼닮고 나오는 것인지. 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형제는 그토록 닮았고, 그래서 누구보다 정겨운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형을 잃은 슬픔을 애잔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박지원의 슬픔을 200년이 넘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 여기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고전이 주는 경이로운 체험이다. 고전을 옳게 이해하려면 이처럼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당대인의 마음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 비로소 고전의 의미가 되살아나고, 그것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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