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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북한의 물리학자 朴贊五(活塘公后)를 재조명한다[201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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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관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6-23 10:08 조회3,5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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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오는 1923년생으로서 일제시대에는 경기중학교 5학년 재학중에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해방이후에는 소련에 유학을 하여 결국 북한에서 물리학자로 활동하였으니 참으로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그가 물리학자로 활동한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그의 행적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가 41세가 되는 1963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하여 그의 북한에서의 행적의 일부를 추정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한가지 미스테리한 부분이 있으니 우랄공업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온 이후 북한 과학자들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과학원에서 활동한 박찬오가 왜 정작 북한인명사전에는 누락되어 있는가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책과 인터넷을 통하여 다양한 인명사전을 조사하였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박찬오 라는 이름은 전혀 도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며 사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싶은데 현재의 정보로서는 더 이상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그가 논문을 발표한 이후의 다른 행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의 프로필을 파악하면 대략적인 궁금증이 풀릴 듯 한데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제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하고 있는 북한 핵개발과 관련한 부분을 언급하자면 박찬오가 소속되어 있었던 물리수학연구소 산하에 1955년 핵물리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논문 발표 전해인 1962년에 영변 원자력연구소로 발전이 된 것인데 과연 여기에 그가 관련되어 있는지 궁금한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그의 행적에 있어서 또 다른 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소련유학과 관련된 부분을 논하고자 한다.

 

그동안 추적한 바로는 그가 우랄공업대학을 마치고 북한으로 귀국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히 언제 귀국하였는지 여부와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물리수학연구소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 이 부분이 확인이 안되고 있으며 또한 핵물리 연구소가 설립될 당시에 그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여부도 관심이 가는 사항이나 이 부분마저도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 필자의 고뇌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박찬오가 물리학을 전공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이 얼마전 그의 논문의 참고문헌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참고문헌에 응용물리학과 관련된 저술이 나온다든지 더불어 러시아 문헌들을 인용한 것으로 볼 때 우랄공업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을 가능성에 신빙성을 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공을 확인하였다고 해서 핵물리학인지 아니면 응용물리학을 전공하였는지 여부는 당시 학교측의 공식적인 자료에서 최종확인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과 같이 북한 물리학자로서의 박찬오의 행적을 정리하였으나 사실 관련자료가 워낙 빈약하다 보니 어떤 확신에 의한 주장보다는 대부분 추정에 근거를 두는 것에 안타까운 심정 금할 수 없지만 이렇게 집념을 가지고 끈질기게 추적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자료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도출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2년 6월 22일(금) 국제칼럼니스트 문 암  박    관    우  올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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