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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소현세자 탄생 400주년을 애절한 마음으로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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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관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10-06 16:41 조회3,6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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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에 출현한 수많은 인물들을 놓고 볼 때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물도 있다고 봅니다.

이미 역사상에서 사라졌지만 꼭 기억하고 싶은 인물이 있으니
바로 소현세자 입니다.

사실 소현세자를 늘 기억한 것은 아니나 그의 불행한 삶이 참으로
비통하게 느껴졌었으나 한동안 잊어 버리고 있다가 참으로 놀랍게도 마의에서 소현세자가 등장하면서 제 가슴깊은 곳에 남아 있었던 소현세자의 그리움이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금년이 2012년이니 어느 덧 소현세자가 서거하신지도 36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수백년전에 서거하신 소현세자가 왜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의 죽음이 당시 조선의 장래를 위해서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비록 치욕의 8년이었지만 청나라 심양에 있으면서 선진문물을 수용하고
외교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던 그가 오매불망 그리던 조선에 귀국한 것이 1645년 2월인데 불과 3개월만에 의문의 죽음으로 그 3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니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심정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청나라에서 익힌 타고난 국제감각을 활용하여 보위에 오른 뒤 국정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전혀 펼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 하였던 그 이름 소현세자이시여!

더군다나 올해는 그의 탄생 400주년이 되는 역사적 해라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런 해에 이런 글을 쓰는 저의 심정이 참으로 착잡합니다.

현재 사인은 독살로 추정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전모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이 하나의 의문사로 되어 있는 그 소현세자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 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죽음은 부국강병의 절호의 찬스를 잡을 수
있었던 조선이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기회가 좌절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데 과연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귀국한지 3개월만에 세상을 떠난 것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처음의 시작은 학질이라 하는데 진원군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시신 전체가 검게 되어 있었다고 하며 신체 여러 부위에 혈흔 흔적이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단지 그가 학질로 인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도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 현재까지는 이 부분이 하나의 설로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청나라에서 익힌 국제감각으로 당시의 조선을 좀더 강하게 만들 수 있었던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의 탄생 400주년을 애절한 마음으로 추모하면서 우리사회에 그의 고귀한 생애가 널리 알려 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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