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66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365

자유게시판

박동선봉군고신 (朴東善封君告身)

페이지 정보

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11-02 09:56 조회6,385회 댓글0건

본문

박동선봉군고신 (朴東善封君告身)    1640((仁祖 18)), 1張, 紙本墨書, 110×9.5cm

1640년 박동선(1562-1640)을 錦川君에 봉하는 封君告身.

이 해는 박동선이 사망하던 해이다.

박동선은 박세당의 조부로 1590년(선조 23) 문과에 합격하여

검열·설서·정언·대사간·이조참판·형조판서를 거쳐 벼슬이 의정

부 좌참찬에 이르렀다.

학식과 문장이 뛰어나 閔世白·李廷龜·李時發·金世濂 등과 교유

가 깊었다.


광해조에 대북정권이 수립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廣津(광나루)

에 은거하였으나 대북 당로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한 때 유배형

이 거론되는 등 정치적 곡절이 많았다.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들 박정이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고,


인조조의 서인정권에서는 중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박동선이 금천군에 봉해진 것은 아들 박정의 靖社勳功에 따른 것인데,

말미에「故錦洲君朴炡考振武原從功臣一等依承傳封爵」이

란  봉작의 사유가 명시되어 있다.


이 고신 역시 박동선·박정의 종손계열인 朴世圭의 후손가에 소

장되어 있어야 하지만 박정의 공신교서 및 초상화와 함께 정조

연간에 서계종택에 위탁된 것이다.

박동선은 서계가문의 연혁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즉 서계가문이 朴尙衷→朴紹로 이어지는 반남박씨 대종에서 분

리되어 독자적인 계파를 형성한 때가 바로 박동선 대이다.

반남박씨는 박소의 아들(5子)과 손자(17孫) 대에 여러 계파로

분파되었는데, 박동선은 朴紹의 장자 朴應川의 6자였다.  








박정 정사공신 교지








박세당시호서경완의(사간원) (朴世堂諡號署經完議(司諫院))    1723((景宗 3)), 1張, 紙本墨書, 54×80cm
 
1723년 박세당의 시호를 文節에서 文貞으로 개시할 때 작성한 사간원의 서경완의. 文貞에 대한 시주는 勤學好問(文), 淸白守節(貞)이다. 署押 현황으로 보아 이 완의는 대사간·정언·헌납이 합좌하여 처리한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