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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錦城府院君 朴墉 新墓表 - 오기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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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김형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4-08 04:53 조회4,044회 댓글0건

본문

 

박용의 전실(前室) 광주김씨가 일찍 졸하시자 묘를 세양공파의 선영 하남에 모셨고, 박용과 후실(後室) 의성김씨의 합장묘는 별도로 양주에 모셨는데 근래에 다시 문중선영으로 이장하면서 3위 합장묘를 쓰고 묘표를 새로 조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새로운 묘표의 내용이 조금 이상합니다. 반남박씨 문중에서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필자 주.


인터넷에 사진으로 소개된 금성부원군 박용의 신묘표<세로5열>는 다음과 같으며 제2열의 8번째 문자 사(事)와 9번째 문자 감(監)은 혹시 오기가 아닐까 한다.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

        右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追贈領議政錦城府院君

        潘    南          朴      公       墉

        贈 政  敬  夫  人   光   州   金   氏   之  墓

        聞 韶  府  夫  人   義   城   金   氏 


박용(1468~1524)은 1524년(중종19) 2월 따님이 왕세자[인종]의 빈으로 간택되자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로 특진되었다. 절충장군은 정3품 당상관 무반품계이며 첨지중추부사는 종실인척에 의례적으로 하사되는 관직으로 역시 정3품 당상관 무반직이다.


당시 병중이라 세자빈 친정 아버지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당연직이며 정1품직인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는 오르지 못했던 것같다.


안타깝게도 그해 6월 졸하자 우의정(右議政)에 추증(追贈)되었고 나중에 사위 왕세자가 왕[인종]으로 즉위하자 국구(國舅)의 자격으로 다시 영의정(領議政)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으로 가증(加贈)되었다. 금성(錦城)은 나주(羅州)의 별호이므로 박용의 본관[반남]을 담은 지명이다.


우의정에게는 당연직 겸직이 주어지는데 經筵, 春秋館, 觀象監 등의 영사(領事) 자리다. 따라서 위 신묘표의 제2열 8번째 문자 사(事)와 9번째 문자 감(監)은 오기가 아닐까 한다.


필자의 입장에서 右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 란 묘표의 문장은 처음보기 때문이다.


제2열의 전반부 右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 를 바로 잡는다면,


        右議政兼領經筵春秋館觀象監事 [右議政 兼 領 經筵 春秋館 觀象監 事]


이거나, 아니면 觀象監을 뺀다면,


        右議政兼領經筵春秋館事  [右議政 兼 領 經筵 春秋館 事]


가 맞을 듯 보인다. 

오래된 구묘표를 판독하고 이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같으며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관상감이 들어간 전자가 맞을 듯하다.


그리고 왕비의 생모에게는 부부인(府夫人) 작호가 주어지는데 문소(聞韶)는 의성의 통일신라 경덕왕대의 지명이므로 역시 본관을 담은 지명이다. 검색해보니 문소부부인 의성김씨의 친정아버지는 익겸(益謙)이며 첨사공파 남파공파 16세손이다. 조부 양중(養中)은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의 친정동생 민무휼(閔無恤)의 사위라는 내용이 <중종실록> 중종19년(1524년) 2월 12일자 기사에 있다.


생모가 아닌 전실 광산김씨는 남편의 품계에 따라 정경부인[1품]만 주어진 것같다. 친정아버지는 거(琚)이며 문숙공파 예판공파 21세손이다.


* 묘표 내용 한 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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