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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독립운동가 박찬오의 생애를 재조명한다[브레이크뉴스-201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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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관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5-12 12:21 조회3,5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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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찬오의 생애를 재조명한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복역 중이던 원산형무소에서 출감
 
박관우 칼럼니스트

 

박찬오의 행적과 관련하여 브레이크뉴스에 2012년 두 차례 관련 칼럼을 쓴 바 있으나 최근에 새롭게 발견된 그의 기록을 확인하면서 필자가 그동안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그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재조명하기로 하였다.

 
박찬오는 1923년 3월 2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대마리에서 박원서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철원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한 이후 1936년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그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비밀결사조직 CHT(조선인해방투쟁동맹)에 합류하였다.
 
이때가 1940년이었으며, 그가 5학년에 재학중인 시기였는데 CHT(조선인해방투쟁동맹)는 당시 송택영,임원빈,박찬오를 비롯하여 총 14명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조직이었는데 11월에 정식으로 결성되나 활동한지 불과 몇개월도 안되어서 체포가 되면서 수난의 시기를 겪었다.
 
박찬오는 처음에 경기도 경찰부에 수감되었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미결수로수감하게 되며, 그 이후 1942년 12월 2일 경성지방법원의 재판에 의하여 징역 단기 3년 ~ 장기 5년을 언도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변수가 발생하니 그것은 당시 수감된 조직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원산 형무소로 이감하게 되는데 왜 유독 그만 감옥을 옮기게 되었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더불어 과연 언제 이감된 것인지도 모르는데, 결국 해방을 맞이하면서 복역 중이던 원산형무소에서 출감하였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러시아로 유학을 가서 2년간의 시험 준비 기간을 거쳐서 마침내 1948년 9월 27일 스베르들롭스크 광산대학 지질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이어서 5년간의 재학기간을 거쳐서 1953년 7월 10일 졸업하였는데, 그가 정확히 언제 북한으로 귀국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1963년 북한 과학원 산하연구소인 "물리수학연구소" 에서 간행하는 학술잡지 '수학과 물리' 제3호에 도영찬과 공동으로 "Ge에 대한 In의 적심 효과를 제고하기 위한 실험" 제하의 논문을 게재한 이후 현재까지 그의 행적을 전혀 알 수 없다. pgu77@hanmail.net
 
*필자/박관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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