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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피징과 자의에 대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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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한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6-02 14:13 조회3,577회 댓글0건

본문

 

피징(被徵)과 자의(諮議)에 대한 소회(素懷).

 

이번 게시판에 올리신 승혁 대부님의 글은 잘 읽었읍니다.

모든 문제점을 잘 지적하시었고, 전적으로 동의의 말씀을 드리면서도

한 가지의 의문점은 해소할 수 없기에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지적하신 글 중에 나오는

두 낱말 때문입니다.

 

먼저 被徵이라는 뜻은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被徵이라는 말은,

臣下의 입장에서는 被動的인 뜻일 것이고,

임금의 입장에서는 能動的인 뜻인 徵召의 뜻에 해당할 것입니다.

 

族譜상에 처음 기록된 년도를 살펴보면,

朝鮮19대 임금인 肅宗大王時期입니다.

 

朝鮮은 개국초기부터 臣强君弱의 나라였기에,

몇몇 임금을 제외하면,

임금 거의가 신하의 권위에 눌려 지내면서,

임금으로서의 포부를 잘 펴지 못하였었습니다.

 

肅宗이 즉위하던 나이는 19세입니다.

어린 임금이 즉위하였지만,

신하들의 권세는 너무나 높은데다가,

宋尤庵이라는 巨木이 원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임금이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압박 하여 왔습니다.

 

그리하여 肅宗이 그에 대항할 다른 代案으로 생각한 것이

徵召인 것이 아닐까 하는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肅宗이 徵召하여 부른 山林은

玄石公을 비롯하여, 尹 明齋등 주로 宋 尤庵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안은 큰 성과도 없이 갈등만 부추겼으며,

왕권의 확충에는 결국 戚宦에 기댈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英祖는 이를 거울삼아 湯平을 하여나갔고,

正祖는 招啓文臣을 키워서 친위세력으로 삼으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역사를 길게 논해야할 문제임으로

여기서는 이 말씀만 드립니다.

 

다음은 諮議의 문제인데,

造語의 뜻은 그 뜻이 말하는 바, ‘묻고 대답하다.’입니다.

 

성암공(弼傳)의 출생년과 졸년을 보면,

21대 임금인 英祖때에 부르심을 받은 것인데,

그러면 思悼世子東宮弼善으로 계셨던 것입니다.

 

東宮侍講院에는 弼善(정사품)輔德(종삼품)이 실제 講學을 담당하였고,

設書(정칠품)司書(정육품)圖書를 관장하였으며,

그 외의 ,正一品으로 宰相이 겸직하였고,

左右賓客副 賓客二品들이 兼職으로 하였으니,

諮議라는 말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글자입니다.

그야말로 品階官職이 아닌 諮議(諮問?)하는 弼善이 아닐까요?


그리고 다음은 '官'자를 앞의 글자에 붙여서  읽느냐,

뒤에 오는 글자의  앞에 두고 읽느냐의 문제인데,

이는 두말없이  관직의 내력을 나타내는 글자인바,

과직은, 품계를 먼저 적고 다음으로 직책을 적어가는 것입니다. 

예; 諱 宗岳 乙卯生. 己卯進士.丙戌文科.官 大匡輔國. 議政府右議政兼
                                          領 經筵. 監春秋館事

그러므로 文科 다음에 '官'字가 있다고 하여,
 
'文科官'으로 읽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族譜를 읽는 사람이라면 상식에 속하는 내용이라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시는 내용이 아닙니까?.

 
이 글은
물론  제 자신의 개인 의견이지,

누구와 의견을 나누어 보거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 바도 없으니,

어느 분이던지 올바른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평택에서 漢雨. 돈수하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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