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목(顯穆) 수비박씨(綏妃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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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5 11:14 조회2,238회 댓글0건본문

휘경원2.jpg
우리종중기록 또는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조선조 22대왕 정조의 빈으로
조선조 23대왕 순조의 생모를 현목(顯穆)수빈박씨라 하였으나
활당공의 찬욱씨가 현목(顯穆)수빈이 현목(顯穆)수비로 추존하였다고 하기에 자료를 찾아보니
고종실록 고종38년(광무5년 1901년) 현목(顯穆)수빈에서 현목(顯穆)수비로 높여 봉하였기에
종중에서나 우리 반남박씨 종원 모두가 앞으로는 현목(顯穆) 수비(綏妃)로 하기로 하였읍니다.
<고종실록> 의 기록
제목; 고종 38년 10월 11일(양력) 현목수빈을 수비로 높여 봉하다
내용; 현목 수빈을 수비로 높여 봉하고 옥책과 금보를 올리는 의식을 대신 진행
하였으며 축하를 올리고 조서를 반포 하였는데 간단한 의식을 하였다.
(참고)
비(妃); 임금의 정실 아내, 비,왕후,내전.중궁전이라 불리우고
왕과같이 품계는 없고
빈(嬪); 임금의 1위 부실(副室)이며,
지위상으로는 정1품의 품계를 가진 여관(女官)이다.
빈이 왕비로 책봉되면 자동적으로 품계는 없어진다.
빈은 궁중의 여성 가운데 품계를 받은 자로서,
위로는 왕과 왕비를 보필하고 아래로는 잡역 궁인을 다스리는 자였다.
빈(嬪):정1품)·귀인(貴人:종1품)·소의(昭儀:정2품)·숙의(淑儀:종2품)·소용(昭容:정3품)·숙용(淑容:종3품)·소원(昭媛:정4품)·숙원(淑媛:종4품) 등의 정1품에서 종4품까지의 왕의 후궁이다.
후궁은 신분이 좋은 가문에서 정식으로 맞아들인 경우와,
한미한 집안 출신의 궁녀가 왕의 성은을 입어 되는 경우가 있었다.
궁관은 정5품의 상궁(尙宮)에서 종9품인 주변관(奏變官)에 이르는 궁녀로서,
종4품 이상의 품계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현목(顯穆)수비박씨(綏妃朴氏)
1770(영조 46)~1822(순조 22). 조선시대 순조의 생모
아버지는 판돈녕부사 증영의정(贈領議政) 준원(準源)의 3녀로 ,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그가 잉태될 때 어머니 원부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큰 구슬을 바치매 그 광채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다 한다.
어릴 때 두 여형(女兄)과 함께 있었더니 별안간 큰 호랑이 한마리가 뜰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두 여형은 놀라서 넘어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으나, 그는 조용히 걸어가서 방안으로 들어가니 모두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1787년(정조 11)에 정조의 빈이 되어 순조와 숙선옹주(淑善翁主)를 낳았다. 왕자를 낳은 뒤 왕자를 낳지 못하는 왕비를 위로하고 공경하니 온 궁중에 화기(和氣)가 가득하였다.
또한, 행실이 착하고 예절이 바를 뿐만 아니라 평소에 말이 적으며 의복과 일상용품들을 극히 검소하게 하니 조야에서 현빈(賢嬪)이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느날 그의 궁에서 시중을 드는 나인(內人)이 의복을 만들 때 작은 천조각을 버렸다가 크게 꾸중을 받은 일이 있었으며, 또한 후궁인 그의 왕자가 세자로 책봉되자, 아첨하는 무리들이 그에게 은밀히 귀중품을 진상하였다가 의금부에 잡혀간 일도 있었다. 창덕궁 보경당(寶慶堂)에서 죽었다.
궁호(宮號); 가순(嘉順),
시호 ; 현목(顯穆),
원호(園號:무덤의 명칭); 휘경(徽慶)이며,
효자동 경우궁(景祐宮:七宮內)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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