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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 산문 모은 노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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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9-04 07:46 조회9,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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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산문 모은 '노란집'

앙상한 뼈다귀로 남은 굴비 삽화.
작가 박완서(1931~2011)가 생전에 살았던 경기도 구리의 집은 아치울 노란집으로 불렸다. 2000년대 초반 그 집에서 쓴 미발표 소설이 포함된 '노란집'(열림원)이 출간됐다. 2001~2002년 계간지 '디새집'에 연재했던 작품들이다.

짧은 소설과 산문을 6장으로 나눠 묶었는데, 짧은 소설 13편이 제1장 '그들만의 사랑법'에 실렸다. 노부부의 일상을 '속삭임' '토라짐' '동부인' '나의 보배덩어리 시절' '휘모리장단' 등의 제목으로 담아냈다. '토라짐'에는 앙상한 뼈다귀로 남은 굴비 삽화(이철원 그림·사진)가 등장한다.

점심상에 오른 알배기 굴비를 먹기 위해 막 수저를 들려는데, 잠깐 전화를 받고 돌아와보니 며느리가 가져온, 한 마리에 오만 원도 넘는 영광굴비가 뼈만 남고 사라졌다. 영감님이 어찌나 알뜰하게 발라먹었는지, 머리와 꼬리를 잇는 등뼈의 가시가 빗으로 써먹어도 좋을 정도다. 마나님의 경악. 평생 제 입밖에 모르는 영감에 대한 지옥불 같은 증오가 일렁인다. 그러나 영감님은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모른다.

노년에 이른 부부에 대한 넉살과 익살. 소시민적 행복의 허위의식을 은근슬쩍 꼬집으면서도 자신 세대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담담하게 풀어낸, 박완서 특유의 유머러스한 작품들이다.



미발표 소설 수록
이 잡는 풍경까지도 그립게 만드는 유머 감각
박완서, 그의 노란집에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


박완서, 그가 살아온 ‘노란집’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숨겨진 보석 같은 소설들. 짤막한 소설들 한 편 한 편 속에 생을 다 옮겨다놓은 듯한 이야기들은 마치 작가가 옆에서 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낌이 생생하다.
 여기에 더해진 글 사이사이의 일러스트들은 일상의 피로를 잔잔하게 어루만지면서 삶의 여유와 따스함을 전달해준다.

『노란집』은 고 박완서의 82회 생일을 기리는 때에 출간되었다.
제목처럼 바로 이 ‘노란집’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수많은 사연들을 들려주어왔다.
『노란집』에서 어머니 품 같은 온화한 글들, 그 문장 하나하나를 마주대하는 것만으로 그리운 작가의 모습이 비추인다.

박완서의 『노란집』은 수수하지만 인생의 깊이와 멋과 맛이 절로 느껴지는 노부부 이야기가 담긴 짧은 소설들을 포함하고 있다.
노년의 느긋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그 따스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1장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2001~2002년 계간지 [디새집]에 소개했던 글들이다.
이 밖에, 노년기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며 삶에 대해 저버리지 않은 기대와 희망과 추억을 써내려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삶의 가장 긴 동안일 수도 있는 노년기에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작가 박완서는 ‘노년’이라는 또 다른 한 생에 대해 말한다.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삶에서 소설이 나올 수는 없다면서.
작가가 말하는 행복하게 사는 법은 지극히 소박한 데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저자소개

박완서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아저씨의 훈장』『겨울 나들이』『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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