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창(葯窓) 박엽론(朴燁論) -역사적 평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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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명 이승수
- 문서유형 학술논문
- 학술지 민족문화연구 47권 시작쪽수 137p, 전체쪽수 37p 권호별 논문보기
- 발행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7년
- 주제분야 인문과학 > 문화연구
- 서지링크 한국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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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어 다운로드朴燁(1570~1623)은 인조반정으로 희생된 대표적 인물이다.
광해군의 인척인 데다 당시 평안감사로 군권을 지녔던 박엽은, 거사 직후 제거 대상 1호로 꼽혀 임지인 평양에서 재판도 없이 비밀리에 죽임을 당했다.
반정 세력은 박엽을 청산해야 할 舊惡의 표상으로 지목했고, 구시대의 많은 不淨을 그에게 전가하여 자신들이 갈 새길을 반듯하게 닦으려 했다.
새로운 권력의 붓끝에서 박엽은 역사의 죄인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다. 반정 직후의 공식적인 논평은 물론, 국가 공식의 역사기록인 『인조실록』에 묘사된 박엽은 가혹하고 탐학한 부패 관료의 전형이다.
하지만 박엽에 대한 기록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역사서 이외의 기록들은 주류 권력이 쳐놓은 감시망의 사각에서 발생되었거나, 여항에서 입으로 전승되다가 이념적긴장감이 느슨해진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었거나, 아니면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보관되다가 역시 시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공개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기록이 여러 층위로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층위에 따라 기록 내용이 상반되거나, 최소한 서로를 보완할 수 있을 만큼의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역사기록으로 고형화 된 박엽의 모습이 해체되거나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그중 역사 기록과 상반되는 기록이 있고, 이 기록이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담지하고 있다면, 이는 역사 해석에 있어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글은 가치 평가와 내용을 달리하는 . 박엽에 대한 제 기록을 통해,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폄하된 그의 역사상을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나아가 권력 형성의 메 커니즘과 이에 대한 반작용의 운동 양상을 검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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