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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아니면 말고"? - 무책임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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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승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5-05 16:43 조회3,644회 댓글0건

본문

<아니면 말고>라는 말이 있다. 자기 마음대로 입밖으로 뱉어낸 말에 대해 <아니면 말고>의 태도, 즉 <내 말이 틀렸으면 없었던 일로 하고>라는 뜻으로, 언행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를 나타내는 속된 표현이다.

임진보 세적편에 <문정공의 출생지>를 "현재의 서울 강서구"라고 명시한 일이 정말 <아니면 말고>식의 태도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아무튼 15만 종인들의 씨족사(氏族史)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이 씨족사(= 세보)의 기록을 하찮게(?) 생각한 나머지, 믿기 어려운 내용들을 거르지 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세보에 올려 놓은 것들이 이곳저곳 눈에 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종인들로 하여금 세보의 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자조적인 태도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문정공(휘 상충: 5세)과 관련되는 예를 하나 더 보기로 하자. 문정공의 행장 번역문 말미(임진보 세적편 119쪽) 주(註) 1)에 보면, ". . . 제一차 왕자의 난에서 정사공신(定社功臣)이 되었음을 말함."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원문 ". . . 戊寅之秋 參決定社之策(무인년 가을에는 정사(定社)의 계책에 참여하여 결단하였고) . . . "에 대한 주(註)로서 문정공의 아드님이신 평도공(휘 은: 6세)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런데 1398년(무인년) 9월 26일에 책훈된 정사공신 29인(삭탈 등의 과정을 거쳐 후에 18명으로 확정됨) 명부(공신록)를 비롯하여 어디에도 평도공은 들어있지 않다. 과연 이 주(註)는 누가 어떤 근거에서 붙인 것일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나 내용이 많이 나타나는 세보의 글에 대해 주(註)를 붙여주는 일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꼭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잘못되었거나 불확실한 내용을 마치 분명한 사실처럼 기록하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종인들)에게 거짓을 진실처럼 믿게 만드는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추기:

세적편 118쪽에 나오는 인명(人名) 중에 "여덕윤(余德潤)"이 나오는데 115쪽의 원문에도 "余德潤"으로 되어 있다. 한편, 유백유가 지은 문정공 행장원본(?)에는 "金潤德"으로 되어 있고, <元度家譜>에는 "徐潤德"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임오보(1642), 계해보(1683)에는 "余潤德"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병술보(1766)에서도 "余潤德"으로 명기하였고, 행장이나 <원도가보>의 기록은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따라서 "여윤덕(余潤德)"으로 고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추기 수정:

위의 추기 부분의 지적은 실수에 의한 오류입니다. 즉 임오보를 비롯한 역대 세보에서 모두 "余潤德"으로 되어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에는 "余德潤"으로 나와 있다는 사실이 몇 년 전 임진보 편찬과정에서 확인되었음을 잠시 잊은 결과입니다(송구합니다). 현재로서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참고: 의령여씨 (宜寧余氏) 관련 웹싸이트 기사에서 "余德潤"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첨언하고 싶은 것은, 옛 세보의 내용을 새 세보에서 수정하여 기록할 때에는 반드시 주(註)를 달아주어야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진보 자손록에는 주(註)가 있으나 세적편에는 주(註)가 없어 일어난 실수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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