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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선생(潘南先生)의 오언율시(五言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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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한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10-27 12:25 조회2,662회 댓글0건

본문

古傳散策

 

반남선생(潘南先生)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요즈음 나는 고전(故傳)들이 가득한 한 서실(書室)을 발견하고, 옛 선인(先人)들이 남겨 놓으신 문집(文集)들을 들쳐보는 재미에 입맛을 잃을 정도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당세(當世)의 우인(友人)이나 후인(後人)들이 남기신 생생한 기록 속에서. 우리들의 선조(先祖)이신 할아버지들의 살아계신 듯한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무숲으로 들어간 무지(無知)한 도시인(都市人)이 수많은 나무들을 바라보면서도 그 나무 이름을 모르고, 수천가지 풀들을 보면서도 그 각각의 풀이름을 모르기에 그저 잡초(雜草)로만 보이듯이, 고전(古傳)들이 그득한 서고(書庫)에 들어와 어정거리면서도 해득(解得)할 능력이 없으니, 그저 산보객이 숲속에 들어와 무심히 길을 가듯, 그렇게 책갈피나 넘기면서 긴 탄식을 내뱉을 뿐임은 글자(漢文)을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배우고는 싶지만, 이제 나이가 칠칠(七柒)을 넘어섰기 때문에 기억력도 사라져, 하루에 한 자()를 외우기도 어렵고 또 이제 나의 수명의 촛불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에 포기하고, 예전에 익혔던 몇 글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좋은 글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해독(解讀)을 하지를 못하고, 그 대강의 뜻만을 간추려서 헤아려 알 뿐이기 때문에, 여기에 그 원문(原文)이라도 실어서 여러분과 함께 읽히게 하고 저 한다

그런데 여기 경령정집에 실린 반남선생의 오언율시는 우리 반남박씨의 세보에도 실리지 못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탁광무(卓光茂)라는 분이 후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우리 선조님들과는 세교가 없음으로 인하여, 이 율시가 있었다는 내용을 몰랐기에 빠트리신 것 같다. 여기서 오늘을 사는 우리 현대인들의 문명의 이기의 혜택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실리는 경렴정(景濂亭)은 아마 호남(湖南) 유허지(有虛地)의 정자(亭子) 이름으로, 이제는 이름이나 그 터()를 찾을 수 없는 옛 시() 속에나 남은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문집에 실린 여러 내용을 보면 경렴정은 전남 광주(光州) 서편(西偏) 25 리 되는 지점에 있는 광산(光山) 탁씨(卓氏)의 유허지(有虛地)같다.

그런데, 이 시()의 주인공의 무덤은 경북 안동의 구수리에 있다.

그는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문하생 탁광무(卓光茂), 우리 반남선생(潘南先生)과 정포은(鄭圃隱) 선생과 종유(從遊)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여말(麗末)의 대 학자(大學子) 중 한분이신 것 같다 

이 경렴정집(景濂亭集)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으며, 활자본으로 탁광무(卓光茂)의 후손이 1850년에 발행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序文)을 쓰신 분은 우리 반박(潘朴)의 한분이신 박기수(朴綺壽) 선생이니, 여기 그 서문과 함께 경렴정집에 있는 칠언 장편시(七言長篇詩) 전편(全篇)을 실어, 감상(感想) 하시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景濂亭竹亭兩先生遺稿舊刊序.  

駒城卓君有文袖其先祖景濂亭竹亭二公遺稿踵門而告余曰吾先祖忠孝節行炳烺一時而年代寢遠後孫孱微無以闡發先休恐遂泯沒無傳今將以二祖遺稿曁傳來派系合付剞劂氏弁卷之文子其圖之余辭不能卓君固請不已余其可以不能而孤其爲先之誠也哉然而奉讀二公遺稿各數十餘什而已他皆散佚無存將於何考德而爲之辭哉然而遣悶一作略具景濂公平生始末直道事君而甘赴嶺海之謫謝事家居而不改溪山之樂足令人起敬千載之下竹亭公則乃以專心性理之學見稱當世我東方自羅麗以來崇尙佛敎性理之學倡自鄭圃隱先生及我先祖潘南先生意者竹亭公之摳衣二先生門而有所師授歟抑景濂公遊於二先生間推其所得以及於過庭之際歟景濂公池亭扁額意非偶然其必有契於灑落胸襟有道底氣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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