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54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353

자유게시판

南草(담배)는 사형으로도 못막았다,

페이지 정보

no_profile 박동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4-21 14:10 조회2,948회 댓글0건

본문

○ 해설,

담배가 조선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고 인조 이후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효종 때 조선에 머물렀던 네덜란드인 하멜이 ‘조선에서는 4, 5세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 당시에는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청나라에서도 담배가 문제 되어, 일본은 1609년 금연령에 이어 1612년 담배 재배 금지령을 내렸고, 청나라도 1639년 청 태종 숭덕(崇德) 4년에 흡연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령까지 공포하였으나,* 모두 흡연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 위의 글은 임진왜란 이후 200년 가까이 애용되며 폐해를 끼치던 담배에 대해 1808년 순조 임금이 경연 자리에서 신하들과 고민하며 대화한 내용이다. 흡연자들은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등의 약효를 내세우는 반면 흡연 반대론자들은 백해무익하고 경작지만 잠식한다는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양상이 마치 오늘날 정신 건강 등을 내세우며 흡연을 이어가는 이들과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끼친다고 반대하는 이들 간의 논쟁을 보는 듯하다.

⊙ 물론 순조 이후에도 신하 박종훈의 예상대로 담배 재배, 제조와 유통은 확산일로를 걸었다. 한 번 피우기 시작하면 대부분 중독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고, 이러한 지속적인 많은 수요를 바탕으로 큰 이익을 보는 집단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술보다도 폐해가 크다고 인식된 담배, 경술국치를 겪으면서는 일본인 제조업자들이 그 이익을 독차지하고 총독부의 주도로 ‘연초세’와 ‘연초 전매제’가 처음 도입되면서 통치 자금 마련의 주요 재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담뱃세는 오늘날까지도 논란거리다.

 

⊙ 올 1월부터 담뱃세가 인상되면서 담뱃값이 80% 넘게 올랐다. 그러나 잠시의 충격 뒤에는 다시 담배를 찾을 어정쩡한 가격이고 담배 관련 회사들의 주가도 오히려 상승세라니, 세수 확대가 목적이었음이 자명하다. 진정한 금연 정책이라면 값을 아예 상상치 못하는 수준으로 올려 금연 의지를 확고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테지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나마 올 4월부터 실내 금연구역에서의 흡연자와 그 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하였고 실외 금연구역도 늘려나간다니, 담배 연기를 피할 권리, 맡지 않을 권리까지 인정해 주는 반가운 일이다. 모쪼록 금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용해 나가길 바란다.

 

⊙ 고단한 일상의 삶 속에서 담배를 친구 삼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담배 연기를 힘들어하는 이들을 돌아봐서라도 담배 회사와 세정 당국만 미소 짓게 만드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길 권한다. 그래서 200년 후의 미래에는 담배의 폐해를 고민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한국 근대 연초산업 연구』(이영학, 2013,,신서원). (글쓴이:김경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