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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 <역사를 통해 본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의 "시대정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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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8-25 18:59 조회2,1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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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오해와 번거로움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 5517번에 링크 걸어둔 글을 이곳에 직접 올립니다. (이 글은 지난 7월 중순 경에 작성된 것입니다.)
 
<복사, 절취, 이동을 금합니다.>
 
최근에 간행되어 반남박씨 대종중에서 무상으로 배포한 『역사를 통해 본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이하 <시대정신>)이라는 책을 대하고 느낀 바가 있어 몇 마디 졸견을 올리고자 한다.
 
상ㆍ하 두 권으로 분책된 800여 페이지가 훨씬 넘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을 무상으로 종원들에게 배포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막상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 책의 간행 동기가 무엇인지 모호해진다. 이 책의 상권 25쪽 추천사에는 "우리 반남박가 집안 자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하게 권유하고 있지만, 왜 이 책이 반남박가의 필독서가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책은 너무도 많은 오류와 왜곡, 그리고 근거없는 객설(客說)을 사실처럼 묘사하는가 하면, 이곳저곳 저자의 편파적 시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은 특정 (소)종중의 홍보용 책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반남박씨라는 씨족집단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내용에 대한 보다 더 면밀하고 철저한 검토를 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존경과 신망을 받는 위치에 계신 분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 대종중의 주요 임원직을 역임하신 원로께서 추천사를 쓰신 사실, 그리고 대종중 당국에서 직접 종원들에게 배포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 책의 내용을 대종중에서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므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본고에서는 그 중에서도 이 책의 핵심이라고 판단되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해 논의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은 『역사를 통해 본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의도하는 이 책의 핵심은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국립국어원에서 간행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보면, '시대정신(時代精神)'이란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이다. 그렇다면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은 '한 시대의 반남박씨 공동체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이 될 것이다.
 
<시대정신>의 저자는 머리말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나라 역사는 반남박씨와 운명을 같이 했다.
제1순세기 1,000년은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박씨 시조왕이 불교로 열었다.
제2순세기 1,000년은 반남박씨 시조 호장공, 문정공, 평도공이 유교성리학으로 열었다.
제3순세기 1,000년은 기독교로 (          ) 누가 열까!"
 
"시대정신"이라는 거대 담론(談論)을 내걸어 놓고 시작하는 첫머리부터 지극히 자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역사관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가 반남박씨에 의해 주도되어 온 것 같은 착각(오해)을 일으키게 만든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시대정신을 종교적 시각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남박씨라는 특정한 씨족집단이 종교라는 정신문화와 무슨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신라의 불교문화를 반남박씨(또는 박씨)가 주도했는가? 조선의 유교문화를 반남박씨가 주도했는가? 단 한 줄의 설명도 없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기독교사회인 것처럼 단정하는 관점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아전인수식 역사관이다.
 
저자는 또한 세대별로 "시대정신"이란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내세우는 세대별 시대정신 역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이 책 93쪽에 나오는 "1세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보기로 하자.
 
"박혁거세왕은 BC57년 신라를 건국하였으며 신라는 불교시대이다. 호장공 응주할아버님이 영주(호장)로 고려 말 고종 때 1204년에 혜성같이 나타나셨다. 1231년 원나라의 침입과 이듬해 1232년 강화도로 왕도를 옮기는 등 온 국토가 유린될 때 지배세력 영주로 나주평야를 굳건히 지켰다."
 
호장공께서 "고려 말 고종 때 1204년에 혜성같이 나타나셨다."느니, "온 국토가 유린될 때 지배세력 영주로 나주평야를 굳건히 지켰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과연 어떤 역사 자료에 근거한 것일까? 내용 자체도 허구적(虛構的)으로 들리지만, 설령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 가정하더라도 무엇이 호장공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135~136쪽에 기술된 '6세 시대정신'을 보자.
 
"평도(휘 은)공과 도소재(휘 힐)공을 생각할 때 순응이냐 절의냐! 두 할아버님들의 가픈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평도공의 호도 조은이다.각주)// 평도공은 조선을 건국하는 데 참여하고, 좌의정에 오르고 왕권강화정책을 실천하였고, 집현전을 부활하여 훈민정음을 창제에 기여하였다. 경제유적의 3복법 시행과 형의 한계를 정하고, 백세불천위에 오르고 집안을 반석 위에 세워 반박의 중시조로 추앙받게 되었다. 평도공의 조선건국 참여! 중시조탄생."
 
이 경우에도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 것)을 나열하였을 뿐, 무엇이 '6세 시대정신'인지 여전히 모호하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기에 왜 "도소재공"을 등장시켜 평도공과 대비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순응이냐 절의냐!"라는 문구는 독자들에게 엉뚱한 오해를 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다. 아마 여말선초(麗末鮮初)의 혼란기에 조선 건국에 기여한 사람들을 "순응"으로, 고려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절의"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문제는 '순응'을 '절의'와 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대비는 결국 '순응'을 은연중에 '고려에 대한 배신'으로 비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는 몇 년 전에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평도공은 고려를 배신하고 새로운 왕조 창업에 가담했으나 "도소재공"은 고려에 대한 "절의"를 굳게 지켰다는 것으로 들린다. 다시 말을 한 번 더 바꾸면, 평도공은 고려의 역적이었지만, "도소재공"은 고려의 충신이었다는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시대정신>의 저자는 불확실한 사실, 어쩌면 아예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진실로 가정하고 이런 납득할 수 없는 대비를 제시한 것은 그야말로 "시대정신"을 왜곡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는 2012년에 간행된 임진보의 기록만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문제를 논하려면 구보(舊譜)의 기록도 당연히 참고했어야 하지 않을까? "도소재공"의 생졸연대가 세보에 기록된 것은 경신보(1980)부터이다. 만약 경신보의 기록을 사실로 받아 들인다면,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도소재공"이 평도공의 형이 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책 135쪽 3항의 기사를 자세히 살펴 보자.
 
"휘 은이 나이가 위인지라 형이 된다. 고려가 망하매, 고려 충신 집안인 우리 가문에서는 조선조를 멀리하게 되자 은할아버님께서 힐詰할아버님을 찾아와 상의하시기를 '동생, 지금 이대로 갔다가는 우리 반박이 멸족을 당하게 될 처지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하시니 동생의 말씀이 '형님, 나는 이미 뜻을 굳힌 바 있으니 형님이 나서서 우리 집안을 살릴 수밖에 없습니다'하시니 그 후로 힐자 할아버지는 고려 수절신으로 숨어살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으니 후손들이 그 높은 뜻을 이어받아 벼슬을 멀리하여 출세길이 끊겼고, 은 할아버지 후손들은 조선조에서 가장 많은 벼슬집안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위의 이야기는 수 년 전 대종중 교양강좌에서 어떤 분이 발표한 내용을 <시대정신>의 저자께서 형과 아우의 순서만 뒤집어 놓은 것이다. 교양강좌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휘 힐(詰)이 나이가 위인지라 형이 된다. 고려가 망하매, 고려 충신 집안인 우리 가문에서는 이씨조를 멀리하게 되자 아우인 은(訔)할아버님께서 형인 힐(詰)할아버님을 찾아와 상의하시기를 "형님 지금 이대로 갔다가는 우리 반박(潘朴)이 멸족(滅族)을 당하게 될 처지이오니,"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시니 의 말씀이 동생, 나는 이미 뜻을 굳힌 바 있으니 동생이 나서서 우리 집안을 살릴 수 밖에 없네하시니 그후로 힐()자 할아버지는 고려 수절신(高麗 守節臣)으로 숨어살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으니 후손들이 그 높은 뜻을 이어받아 벼슬을 멀리하여 출세길이 끊겼고 은()자 할아버지 후손들은 이씨조(李氏朝)에서 가장 많은 벼슬집안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교양강좌 발표자는 신뢰할 만한 근거도 없이 "도소재공"이 형이고 평도공을 아우라고 주장하여 많은 종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당시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소재공"과 평도공의 차서(次序) 문제는 발표자가 제시한 "도소재행장"과 경신보(1980)의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을 낳았다. "도소재행장" 및 경신보의 기록에 의하면 "도소재공"은 1390년(공양왕 경오년)생이다. 1390년생인 "도소재공"이 1370년(공민왕 19년)생인 평도공의 형이라고 우기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대정신>의 저자도 이러한 모순을 깨닫고 p.135의 각주 53)에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평도공을 형으로, "도소재공"을 아우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시대정신>의 저자는 이 이야기에 숨겨진 속내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히 차서만 뒤집어 놓아 결국은 우스꽝스러운 허구적인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고려가 망하던 1392년에 "도소재공"은 겨우 만2살에 불과한 어린 아기였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런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주저없이 그대로 <시대정신>에다 옮겨 놓은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자가 참고한 자료들은 도대체 어떤 것들이었을까? 주어진 자료를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분석했더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위에 거론한 문제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이 책을 보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가장 큰 의문은 과연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성관(姓貫)과 구분되는, 반남박씨만 갖고 있는 특징적인 시대정신이 무엇인가? 어떤 "정신"을 공유하려면 문화적 공동체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문화적 공동체 형성은 지리적 인접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다른 성관들과 마찬가지로 반남박씨 사람들도 세대를 내려오면서 한반도 전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반남박씨 후손들이 호장공의 유전자를 부분적으로 공유한다는 사실 외에 어떤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반남박씨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시대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 시대정신>은 이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보다 더 세밀하고 심각한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승혁
<복사, 절취, 이동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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