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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의견 | 박명서 교수님의 게시판 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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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8-26 16:36 조회2,647회 댓글1건

본문

「시대정신완성품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떨리는 마음으로 이 책을 엮어갔다. 살아있는 현대인물을 기록하는 것을 말리는 분도 있었고 자신이 책에 올라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특수종파나 특정계층에 치우친 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27()는 의도적으로 집안 표시를 않했다. 화학적 융합을 시도해 본 것이다.
 
[논] 완성품이 아니라는 말로 오류가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책은 이미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배포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걸렸든 100년이 걸렸든 오류는 오류입니다. 살아있는 현대인물을 기록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편파성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다. 그런데 27세(우)는 집안 표시를 안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습니다. "화학적 융합"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호합니다. 개념이 모호한 어려운 말을 사용하여 문제의 초점을 흐리고 계십니다.
 
 
이 책이 교정자가 나오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책에 나온 인물 한분 한분이 독립된 역사성을 가진 분들이다. 건드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느 집안에 판사나 교수를 왜 않올렸느냐고 하였다. 판사나 교수라고 해서 다 올리면 이 책이 어떻게 되겠는가. 역사성을 가진 인물이라야 올리는 것이다.
 
[논] "교정자"? 의미? (책에 나온 인물들이 각각 독립된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교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  "판사나 교수라고 해서 다 올리면 이 책이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말씀. 글쎄요,  어떻게 될 지 누가 알겠습니까? 설명 좀 해 주시지요. "역사성을 가진 인물이라야 올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올리는 기준이 "역사성"이었군요. 그러면 이 책에 오른 인물들은 모두 "역사성"을 가진 인물들이겠군요. 잘 알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같은 판사(또는 교수)라 하더라도 박○○는 "역사성을 가진 인물"이라서 올리고, 박△△은 역사성이 없는 인물이라서 제외했다는 뜻이군요. (단, "역사성"의 뜻이 무엇이며, 또한 역사성 유무를 어떻게 판단하는 지도 알 수 없음).
 
 
5세 문정공은 친명파요 숭유정책, 6세 평도공은 조선조개국과 왕권강화정책, 11세 야천공은 도학정치, 15세 서계공은 근세실학사상, 19세 문도공은 근대천부인권사상, 24세 춘고공(휘 영효) 선생님은 1919년 기미독립혁명후 임정부대통령으로 현대만민평등사상을 펼쳤다. 대성들도 시대구분이 불가능 한데 우리선조들은 그렇지 않다. 얼마나 훌륭한 집안 인가. 이 시대정신이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나 P. 28, 한 쪽만 살펴보아도 사실상 이 책을 다본 것이다.
 
[논] 훌륭한 선조가 계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문중의 자랑입니다.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조상에 대한 과도한 숭배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는 개념 정의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 주신분들에게 감사하다. 쉽지 않은 일인데. 오류가 많이 있다는데 주저마시고 저의 이메일(myungser@hanmail.net)로 그 내용들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논] <역사를 통해 본 반남박씨의 시대정신>(이하 <시대정신>)이란 책은 이미 출판되어 많은 종인들에게 배포되었고 조만간 전국 유수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관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읽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반남박씨라는 혈연집단 전체가 관련된 문제입니다. 이메일을 통해 개인적으로 주고 받는 대화로 끝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자, 탈자 몇 개 있다고 문제 삼은 것이 아닙니다.
 
 
현대는 사상이 비동시성의 시대이나 우리는 동시성을 찾아야 한다. 반남박에서만 음으로 문중사가 나왔다. “가는 길이 낯설고 험할 지라도 바람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는 쇠얀(키엘케갈 애칭)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그 낯선 길을 가야만 하는 고로 갈수 있다.
 
[논] 현대를 사상의 비동시성 시대라고 규정해 놓고 동시성를 찾는다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다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그것이 저자가 추구하는 목표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요. 제가 천학한 탓에 쇠얀 키에르케고어(Søren Aabye Kierkegaard)[쇠얀은 이름, 키에르케고어는 성. 일반적으로 '키에르케고르'로 많아 알려져 있음]가 했다는 말은 잘 모르겠습니다.
   "반남박에서만 처음으로 문중사가 나왔다."고 개인적 자부심을 가지시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역사적 사실과 다른 문중사를 세상에 내놓는 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정신>이 "반남박씨 문중사"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반드시 대종중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토론을 거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저자께서는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이야기만 하셔서 초점을 흐리고 계십니다. 문제의 핵심은 <시대정신>이 허구적인 이야기를 사실처럼 받아들여 반남박씨의 문중사를 왜곡하고, 또한 타인의 글을 사용함에 있어서 저작(著作)상의 일반적 준칙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논>자: 박승혁 올림.

댓글목록

박창서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박창서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자의 해명에서 “역사성”이라는 말을 강조하시니 한 말씀만 드립니다.
종중사가 “역사적 사실”이어야 할 것이고 등재인물도 “역사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종중사를 쓰는 데는 종중의 역사에 얼마나 기여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사회적인 지명도나 직업이 우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보면 아저씨께서는 대전 뿌리공원 반남박씨 조형물의 글을 쓰신 이 한가지만 가지고도 “역사성”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리고 임진보를 만드는데 수많은 좋은 의견을 내시고 종중 발전방향을 제시하신 것 등의 “역사성”이 무시된바가 안타깝습니다.
2016.8.27
박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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