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도공 朴訔과 백동우물 터
페이지 정보
본문
백동우물 종로구 동숭동 2-39
조선시대 柏洞에 있었던 큰 우물이라 하여 백동우물이라 불린다.
백동이란 지명은 조선 태조 때 공신이었던 朴訔(1370~1422)이 자신의 옛집에 백림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겼다 하여 이지역 일대를 “잣나무골” 또는 백동이라는 이름이 유래되 있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수도가 생활화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었던 대표적인 큰 우물로 지금은 우물터가 덮여 있어 우물의 형태와 규모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물맛이 좋고 수량도 풍부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飮用하였던 都城내에 잘 알려진 대표적인 우물이다
※ 위의 사적지는 세양공 후 찬유님이 찾아내 종중에 알려와 부도유사외 여럿이 방문하여 확인을 하였음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우물로서, 이곳의 옛 지명인 백동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우물이 크고 깊어서 아무리 가물어도 줄지 않으므로 큰우물이라 하였고, 우물 옆에 연당(蓮堂)이 있어 연당우물이라고도 하였다.
※ 찾아가는길
혜화역 1번출구에서 우측, 낙산 오르는 길로 오르다가 일석(이희승)기념관옆 고목나무 아래 표석이 있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