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의 문묘명현 박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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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의 문묘명현 박세채
한국명문 (2004-06-06 오후 8:39:46) Hit : 161 Vote : 16
반남박씨 가문에 큰 인물이 났다.
한양과 기호지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유현이 탄생했다.
노른자위 서울 명문대가의 영웅호걸 속에서 우뚝 솟아오른 석학의 출현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세채이다.
박세채는 1631년에 태어났다.
호는 현석이다. 학행이 뛰어나 1658년 세마를 지내고 이조판서를 거쳐
1694년 좌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순이고 문묘를 비롯하여 나주의 반계 등 여러 서원에 배향되었다.
문순공 현석 박세채는 조선에 제일가는 복상[복이 많은 상신]이다.
조선조에서 문묘에 배향된 명현은 모두 14명이다.
이 중에서 상신을 지낸 인물은 우암 송시열과 박세채 둘 뿐이다.
송시열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 불행했다고 볼 수 있다.
박세채는 천수를 누린 상신으로 문묘에 배향되었으니 어찌 복되다 하지 않으랴 !
현석 박세채는 문묘명현 14명 중 막내둥이다. 막내는 재롱도 많고 사랑스런 개구쟁이다.
현석은 개구쟁이처럼 문묘에 계시는 근엄한 명현들의 주자 학설을 대뜸 사래질해 버리고도 문묘14명현의 막내둥이가 되었다.
문묘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4성 10철 6현과 한국의 18명현의 위패를 모신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영예스런 성전이다.
한국 18명현 중 신라의 설총, 최치원
고려의 안유, 정몽주를 제외한 14명현은
조선조 인물이다. 여기서 9명만이 175개 가문에 들었다.
김장생과 김집은 부자이며
송시열과 송준길은 같은 은진 송씨 한 가문이니
175개 가문에서 7개 가문만이 문묘명현의 영광을 누렸다.
175개 가문 중에서 반남박씨 이외 위광이 찬란한
서울명문들은 문묘명현을 단 한 명도 못냈다.
현석은 175개 가문 내 서울 명문 중 유일한 문묘명현이다.
조선조 최강의 명문 안김 김생해 가문도 해내지 못한 문묘명현의 꿈을 이루었다.
연안이씨 이정구 가문, 대구서씨 서성 가문, 전주이씨 이경여 가문, 동래정씨 정유길 가문과 같이 서울의 상공을 눈부시도록 빛나게 하는 별의 무리들이 넘볼 수 없는 위업을 반
남박씨의 현석이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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