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솔공의 간략한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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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진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5 11:34 조회1,838회 댓글0건본문
온 종원들께서 부솔공(東尹)을 잘모르고 계시기에 간단히 소개를 하니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副率公은 11세이신 紹(문강공)의 子 5형제중 4남 應福(졸헌공)의 장남으로
다른 형제들 보다는 관운이 없어 많은 버슬을 못하여 관직은 없었다 아마도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모시는 책임감도 컸겠지만 옜날에 장손들은 거의가 같은 처지였을 것이며 이분의 성격이 문학보다는 무반에 더 무게를 두시지 않았나 심증이간다 !
1592년에 倭寇가 침범할때 光海君이 세자로 책봉되어 伊川에 왔을시 마중을 나가 마지
했고 호위할 장수를 모집중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로 제수 받았고 사후 12년
만에 호성원종일등공신(扈聖原從一等功臣)에 追錄이 되였으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으로 증직 되었다 !
그후 선조들 몇분의 미미한 관직생활로 이어지다 요즈음에 와서는 현직 판사와 문광부차관 공인회계사는 물론 정계 재계에도 훌륭한 후손들이 활발히 진출하고 있어 같은 종중에 한사람으로써 긍지를갖게 된다
副率公(부솔공)의 호칭은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옛 선조 들께서 사용했든 칭호로 알고 지금까지 전수 되어 온줄로안다
우리가 大同譜 표지에 옥편 어디에도 찾아 볼수없는 潘(쌀미밑에바전)자를 사용해오매
그 연유를 어느 종원에게 물어보아도 아는종원이 없으며 다만 선조들로부터 전수되어
왔기에 그렇게 쓸수밖에 없다는 대답입니다 부솔과(수)와 비슷한 연유가 아닌가 싶다
광주 勝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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