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073
  • 어제801
  • 최대1,363
  • 전체 308,107

자유게시판

반성부원군파 師純할아버지 후손만 보세요.

페이지 정보

no_profile 宗緖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10-08 22:50 조회1,704회 댓글4건

본문

 보학에 관심있는 반성부원군파 師純 할아버지의 후손에게 전합니다.
 계대: 반성부원군 應順 - 시정공 東彦 - 나헌공 潢 - 世楠 - 泰遜 - 弼虎 - 師純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師純의 후손은 1958년 무술보에 처음 수록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4년(1728)4월9일 기록에 박필충,박필호 등을 효시하다.
 대사간 송인명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박필현이 무너져 달아난 뒤에 그 동생 박필충이 잡혔는데, 그때 군사를 일으킨 정상을 그가 반드시 알았을 것이니, 바로 참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하니 그대로 따랐다.
 판의금부사 이집은 말하기를, '박필현의 동생 박필호도 이미 잡혀 포도청에 갖혔다고 하니, 마땅히 박필충의 예에 의하여 똑같이 효시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이내 명하여 그 조카를 절도에서 종이 되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인좌와 이웅좌가 모두 적괴이니, 그 아우 이기좌를 다시 물을 필요가 없다. 이인좌의 아내는 박필현의 아내의 예에 따라 교수형에 처하고, 그 아이는 나이가 아직 차지 않았으니, 사형을 감하여 절도에 종이 되게 하라.' -후략-
 
  위의 내용을 참고하면, 박필현의 庶弟는 弼忠과 弼虎가 있었다는 사실과 형제들이 1728년에 사사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술보에 아들 사순은 갑자생으로 수록하였습니다, 임진보에는 영조갑자(1744)생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무신란에 연좌돼서 죽은 사람이 16년후에 아들을 낳았다고 수록한 것입니다.
  
1. 사순(갑자-경자1720) - 진원(갑신-임신1752) - 종철(을사-계사1773) 로 수정해야 하고,
2. 연하여                 동원(병술-갑술1754) - 종악(병오-갑오1774) 로 수정해야 하고,
3. 경신수록된            재원(병자1756) - 종철(무오-갑오1774)/종민(병신1776) 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4. 임진보 347p  조양(임인-갑인1854)
5. 임진보 356p에는 아들 인양(무술1838년생), 아버지 제곤(병인1866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수(정묘1807)- 제곤(병인-경인1830)/성산이씨(기사-계사1833)/경주이씨(갑술-무술1838) -인양(무술-경술1850)
6. 임진보 364p  종민(병신1776) - 만수(정미-기미1799) - 제채(기묘1819) - 윤양(무술1838)


위의 내용과 같이 수정하는 것을 협의하고자 하오니, 師純 할아버지의 후손 중 수록에 참여하신 분이나, 내용을 아시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반성부원군후  宗緖  (010-6275-6711)

댓글목록

chanseo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chanseo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생졸연도를 확실한 근거도 없이 추측하여 자의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차라리 생졸연도를 기록하지 않는(즉 삭제하는) 것이 어떨까요?

chanseo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chanseo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Re》宗緖 님 ,
우선, 저는 반성부원군 후손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
그러나 족보(세보) 문제는 어느 특정 계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남박씨 종중 전체와 관련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느 특정한 계파의 족보 오류라고 해서 그 계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반남박씨세보 자체의 신뢰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족보(세보)의 오류를 발견하시고 그것을 바로 잡으시려는 宗緖님의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 반남박씨 종중의 일원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바는,
"수정"이 진정한 의미에서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숨기기 위해 근거 없는 추측으로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宗緖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일반적인 차원에서 드리는 말씀이오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宗緖님께서 지적하신 오류와 유사한 오류가 다른 계파에서도 상당히 많이 발견됩니다.
거의 대부분 세보를 건너 뛰어 나중에 입록된 경우인데 특히 갑자보 이후에 집중적으로 발견됩니다. 아마 새로 입록하는 과정에 "연접 신빙도"를 높이기 위해 잘 알지 못하는 조상님들의 생졸 연대(간지)를 자의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닐까 사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간지연도를 서기연도로 환산하면서 오류가 드러날 수밖에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세보의 오류를 바로잡으시려는 宗緖님께 다시 한번 더 깊은 공감과 존경을 표합니다.

宗緖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宗緖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Re》 반성부원군파, 특히 師純 후손이 아니라면 더이상 왈가왈부 하지 마세요.
본문 내용에도 적어 놓았듯이, 박필현의 형제들은 무신란에 연좌되어, 1728년에 교형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병술보(1766), 을유보(1825)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무술보(1958) 수록시, 弼虎의 아들 師純이 영조갑자(1744)생이라고 수록한 것이 문제의 시작인 것입니다. 1958년 무술보 수록에 관여하신 분들이 역사적 사실을 부지 또는 망각하여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탓입니다.
과거의 오류를 발견하여 수정을 하는 것은 후손의 도리입니다.
허위로 세보를 수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師純의 후손이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부분만 수정할 것 입니다.
(반성부원군 제사에 참석하지도 않는 후손들이기 때문에 신경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chanseo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chanseo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Re》宗緖 님 ,

<과거의 오류를 발견하여 수정을 하는 것은 후손의 도리입니다.
허위로 세보를 수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師純의 후손이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 부분만 수정할 것입니다.>
라는 宗緖님의 말씀에 전적으로(100%)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다만,
<반남박씨세보> 내의 문제는 그것이 어느 계파의 문제이든
반남박씨 후손이라면 누구라도 지적할 수 있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반남박씨세보>의 문제는 곧 반남박씨 종중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세보의 오류를 발견했을 때, 해당 계파에서 직접 수정하여 세보에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대종중 세보편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사료됩니다.

과거의 오류를 찾아 바로 잡아야 한다는 宗緖님의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