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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Re..정경부인 남양홍씨 묘갈명 原文

페이지 정보

no_profile 宗緖(倉守公后)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4-04 10:12 조회1,062회 댓글8건

본문


세적편에 실려있는 야천 할아버지의 부인 남양홍씨 할머니의 묘갈명 원문 입니다.

 '夫人 日享專城列鼎之養 封爵之隆 躋至極品' 은 머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부인은 날마다 전성열정의 봉양을 받으시고, 봉작의 융숭함은 극품까지 뛰어 올랐다' 고
해석하는데, 외명부의 극품은 정경부인이 아니던가요?

남양홍씨 할머니께서는 정경부인에 제수되어 1569년 부터 1578년까지 생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임진보 세적편의 남양홍씨 할머니 묘갈명 제목도 잘못 된 것이고, 
야천 할아버지의 축문도 잘 못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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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宗緖(倉守公后)>님,
글 속에 "흥분"하고 계시는 듯한 느낌이 전달되어 옵니다.
(물론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진정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아마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 . . .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宗緖(倉守公后)>님이 잘못 되었다는 뜻이 전혀 아닌데
왜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지 약간 의아스럽습니다.

계해보를 비롯한 세보에서 贈자 없이 표기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고
<宗緖(倉守公后)>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몇몇 자료에서 贈자 없는 표기가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극품에 올랐다"는 표현이 "정경부인"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贈"인 경우에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으면 합니다.

<한가람>님께서도 그런 사실들은 모르시지는 않았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다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듯이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보지 말고,
그 반대쪽도 함께 잘 살펴보자는 의도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이런 자료도 있으니 "맞든, 틀리든" 한 번 살펴 보자>는 뜻이셨을 것입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에서 다른 예가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 것일 뿐입니다.

함께 잘 살펴보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검증하고,
만약 잘못된 곳이 발견된다면, 고치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만
너무 단정적인 표현은 나중에 후회를 남길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宗緖(倉守公后)>님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니
혹시라도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오해를 푸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조상 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것 같습니다.
늘 한 발자국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宗緖(倉守公后)>님의 지식과 열의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宗緖(倉守公后)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宗緖(倉守公后)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Re》4kraphs8 님 ,
승혁 아저씨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지난주에 이번 건과 별개로 여러 번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시고,
전화주십사 하고 문자도 남겼는데 감감무소식 이었습니다.

제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 담당자와 통화를 했습니다.
현재의 사정을 얘기하고 '남편이 졸한 후 증직벼슬을 받으면,
살아있는 과부는 외명부 품계를 爲로 받는지? 贈으로 받는지?' 문의했습니다.
답변은 '爲로 받는다' 였습니다.

근거자료를 3일내로 찾아서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답변이 오면 게시판에 글 올리겠습니다.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신원이 확인된 경우가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원래 어릴 때부터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 버릇을 아직 못 고친 탓입니다. 미안합니다.

2. 홍씨할머니의 품계에 대해서는 나도 오래 전에 <宗緖(倉守公后)>님과 같이 유추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확신을 갖지 못했었지요. 그리고는 별 관심 없이 지나갔습니다.

3. 그런데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문강공 제문을 보고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세적편을 뒤져보니 贈자 붙은 예가 보이길래 내가 앞서 유추한 것이 잘못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내려졌지요. 나 자신도 과연 어느 쪽일까 궁금했습니다.

4. <宗緖(倉守公后)>님께서 열의를 갖고 연구하고 문의하여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다면 아주 좋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 물론 전체 종원들의  세보(족보)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5. 다만 <宗緖(倉守公后)>님께서 율곡 선생을 비난(?)하는 듯한 말씀이나, ". . . . 하실 건가요?", ". . . . 하시겠습니까?", ". . . . 아니던가요?" 등의 힐난하는 듯한 말투, 그리고 문강공 축문이나 임진보 세적편의 기록을 단칼에 "잘못"이라고 잘라 말씀하시는 태도에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물론 <宗緖(倉守公后)>님의 판단이 옳을 수 있겠지만, 잠시 생각하는 듯이 "다시 살펴 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꼰대" 생각이겠지요?)

<한가람>님이나 나나 그냥 "이런 자료도 있다"는 것을 보였을 뿐인데, 마치 <宗緖(倉守公后)>님께서 틀렸다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宗緖(倉守公后)>님 덕분에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 반갑고 고맙습니다.

앞으로 임오보~임진보에 이르는 우리 세보의 종적, 횡적 연구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아울러 늘 건강을 기원합니다.
(사족: 우리 세보! 곳곳에 연구해야 할 문제가 많지요?!)

宗緖(倉守公后)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宗緖(倉守公后)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Re》4kraphs8 님 ,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흥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작년 9월경에 대종중 종사유사에게 임진보 세적편에 정경부인 홍씨 할머니의 묘갈명 제목이 잘못된 점과, 묘갈명 내용 중 사섬시정 홍사부와 청주한씨의 결혼 부분 해석이 누락돼 있음을 지적하고 수정을 의뢰하였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3.28일에 야천 할아버지가 증직 받은 것이므로 홍씨 할머니는 증 정경부인이 맞다는 의견을 접수하였고, 게시판에 공론화할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본 결과 충무공 이순신의 부인 상주방씨 사례와 반남박씨 온양공파 필영 할아버지의 둘째 부인 사례를 확인하여 남자만 증직 교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부인도 贈 또는 爲로 외명부 품계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3.29일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오류가 있음을 알고 있는 반성부원군의 묘지명 내용과 야천 할아버지의 축문이 게시판에 올라왔기에, 6개월 전에 지적한 오류에 대해 아직도 인정을 안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남일공 사손 종서 형님과 충분히 협의했던 사항 이었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 고문서 담당자의 의견과 묘표 묘비 연구가(정발산터줏대감)의 의견도 접수하여 제 의견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았고, 근거 자료로 제시하였습니다.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카드는 모두 보여드렸는데, 그래도 남양홍씨 할머니에 대한 계해보~임진보 까지 수록내용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신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6개월 전에 지적한 오류에 대해 아직도 인정을 안 하시는구나" 라는 글은 선 넘으신것 같습니다.
제가 작성해서 올리고 만든 세적이라면 종서대부님 의 의견으로 옳고 그름을 토론해 볼 여지가 있으나 임진보는 반남박씨세보로 엄연히 당시 편찬위원들께서 심사숙고 해서 만든 것인데, 인정 하고 안하고를 떠나 어찌 제가 감히 그것을 내 마음대로 수정 한다는 말인지요? 대부님의 댓글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종사유사가 대부인 내가 지적한것에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았음에 비분강개해 계심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세보의 수정은 정식으로 등대 요청서에 형식에 맞게 신청하시면 전자세보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해서 수정 여부를 결정해 당해년도 6월이나 이듬해 6월부터 수정작업을 거쳐 교정이 됩니다. 누가 유선상으로 문자로 지적한다고 해서 일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수정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宗緖(倉守公后)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宗緖(倉守公后)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Re》관리자 님 ,
"6개월 전에 지적한 오류에 대해 아직도 인정을 안하시는구나" 라는 말은 종사유사님이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난 6개월 동안에 전자세보심의위 등에서 同사안을 검토했을 것이고, 검토결과 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통보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에 '필영 할아버지의 둘째부인 사례'를 들어 '남양홍씨 할머니의 사례'를 설명한 분이 계셨는데, '조선왕조실록'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을 안하더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전자세보심의위에서 다각적이고 심도 깊은 검토가 있었다면 오류를 인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렇지 않다는 통보를 받았기에 그렇게 생각 한 것 입니다.
(절대 종사유사님 한분의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임진보 편찬위원들께서 심사숙고해서 만든 것" 이라는 말씀은 수긍할 수 없습니다.
그 분들이 경신보까지 贈○○판서, 贈○○참판을 임진보에는 ○○판서, ○○참판 이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20여 군데나 바꿔 놓으신 분들이 아니던가요?

선조님들께서 하신 일이라고 모두 맞을 수는 없습니다. 일부 개인의 의견만으로 의사결정하기보다는 다각적인 자료 수합으로 합리적이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여 수정할 부분은 수정을 하고, 수정 근거를 기록해 놓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선조 현양에 대한 의지가 깊어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난 6개월 동안에 전자세보심의위 등에서 同사안을 검토했을 것이고, 검토 결과 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통보 받았다고 생각했기 . . . . . >

위의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전자세보 심사위원회에서는 그런 사안을 검토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아예 들어본 일조차 없으니 검토한 일도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견"을 받아들이고 말고 할 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일이 그런 것 같습니다.
종종 짐작으로 내린 판단은 오해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

다시 한 번 더 분명히 밝혀 둡니다. <宗緖(倉守公后)>님의 이야기 내용을 잘못이라고 말한 적도 없고,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한가람>님이나 나나 "이런 것도 있으니 한 번 살펴 보시라"는 뜻으로 자료만 게시판에 올렸을 뿐입니다.

선조님들께서 하신 일이라고 모든 것이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니라 神이겠지요.) 살피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확인해서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할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문제를 열린 마음으로(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같이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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