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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선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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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1:49 조회1,802회 댓글0건

본문


 

아래글은 청송심씨댁 홈페이지에 기록된 글을 소개 하고자 한다


5세 - 심온 (세종의 국구이고,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의 아버지이며, 문종과 세조의 외조부이고,
태종 이방원과 사돈지간이며, 태조 이성계의 부마인 심종의 형임, {고려 말, 11세에 일찍, 진사가 되고, 문과에 급제,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조선 초 태조 이성계 때, 병조 의랑<병조 참판>, 정종 때, 대호군, 태종 이방원 때, 상호군을 거쳐, 우부대언<우부승지>이 되었을 때, 그의 딸이 충녕군<세종>의 부인이 되어, 경숙옹주<군부인>에 책봉됨,
이후에, 좌부대언<좌부승지>, 삼군부 총제, 관찰사, 대사헌, 판한성부사, 삼군부 도총제, 이조 판서, 참찬, 찬성 등을 지냈고,
충녕군<세종>이 충녕대군<세종>으로 승격되자, 그의 딸도 삼한국대부인<부부인, 대군부인>으로 승격되었고,
1418년<태종 18년>, 충녕대군<세종>이 형인 폐세자<양녕대군>를 대신하여, 새 왕세자<세종>에 책봉되자, 그의 딸도 경빈<왕세자빈>에 책봉되었다.

두 달 후에, 태종 이방원의 양위로, 왕세자<세종>가 왕<세종>으로 즉위하여, 그의 딸이 세종의 왕비<소헌왕후>가 되자, 그는 세종의 국구가 되어, 청천부원군에 봉해지고, 영의정<영상, 수상>에 특별히 제수되었으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소헌왕후의 밀정인 강상궁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궂이, 조선 한양으로 귀국하는 도중,
상왕 태종 이방원의 외척 제거 정책에 의하여, 누명을 쓰고, `강상인의 옥' 사건의 수괴로 지목되어,
의주에서 피체되어, 한양 의금부로 압송되어, 심한 심문을 받고, 수원으로 압송되어, 억울하게 사사됨.},



위의 글에서 말하듯
심온선생의 죽음은 "상왕 태종의 외척 제거 정책에 의해서 누명을 쓰고 처형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심온선생과 평도공에 대하여 확대 해석을 할필요가 없고,
이러한 일은 역사의 한 사건에 불과하다.
일부 몇사람이 이런일에 과민한 반응을 이르키고 있으나
6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를 거론 한다는 것이 양 가문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심씨 가문에서도 이일을 확대하지 않고 덮으려고 하는 모습이 역역히 보인다.

한가람님과 승모님의 글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좋은 의견에 감사드리고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한가람님, 승모대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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