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45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244

자유게시판

족보에 나오는 용어 몇 가지

페이지 정보

승모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4:11 조회2,034회 댓글0건

본문


부탁말씀: 아래 글의 복사, 이동, 절취, 변조, 인용을 금합니다.

족보(族譜)와 서자손(庶子孫): 혼인과 죽음의 언어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天子死曰崩, 諸侯曰薨, 大夫曰卒, 士曰不祿, 庶人曰死”라는 말이 있다. 즉 천자의 죽음은 붕(崩), 제후의 죽음은 훙(薨), 대부의 죽음은 졸(卒), 선비의 죽음은 불록(不祿), 그리고 일반인의 죽음은 사(死)라 한다는 것이다. 신분의 구분이 죽음의 언어에서조차 등급화로 나타나고 있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이러한 신분의 차이가 족보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되어 두서없이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 대체로 19세기 이전에 나온 족보들은 한 결 같이 적서(嫡庶)를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다. 즉 서자녀(庶子女)의 경우, 庶, 庶子, 또는 庶女라고 이름 바로 위에(또는 바로 밑에) 표시해서 쉽게 눈에 뜨이게 해 놓고 있다.

적서의 차별은 이름 위 또는 아래에 쓰인 큰 글자 외에도 다시 두 군데에서 두드러지는데 그것은 바로 혼인과 죽음에 관한 사항이다. 일반적으로 족보에서는 배우자(配偶者)를 표시할 때, 사망한 경우에는 배(配)라 표시하고 생존하고 있는 경우에는 실(室)이라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범(不可犯)의 원칙은 아닌 것 같고 각 성씨 문중(門中)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대구서씨(大丘徐氏) 족보를 보면, 생사(生死)에 상관없이 모두 배(配)로 표시하고 있는 반면 반남박씨(潘南朴氏)의 경우(계해보癸亥譜 기준)에는 일률적으로 실(室)로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19세기 이전의 족보를 살펴보면, 생사 구분보다는 오히려 적서(嫡庶) 구분에 더 집착하여, 사용하는 용어를 달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구서씨를 비롯하여 안동김씨(安東金氏) 등의 족보를 보면, 적자손(嫡子孫)의 경우에는 배(配), 계배(繼配)/후배(后配), 삼배(三配) 등으로 표시하고 있다. (참고: 배우자가 왕녀(王女)인 경우에는 상(尙)이라는 특별한 표시를 해서 그 “존귀한”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서자손(庶子孫)의 경우에는 대구서씨 족보에서는 취(娶), 재취(再娶), 삼취(三娶)로 표시하고 있으나, 안동김씨 족보에는 실(室)로 표시하고 있어 配와 室의 구분이 死와 生의 구분이 아니라 嫡과 庶의 구분에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반남박씨의 경우(계해보 기준)에는 적서(嫡庶)의 구분을 실(室)과 취(娶)로 하고 있다. 즉 적자손(嫡子孫)의 경우에는 그 배우자를 생사에 관계없이 실(室), 계(繼), 또는 실(室), 재(再), 삼(三)으로 표시하고 서자손(庶子孫)들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취(娶), 계(繼) 또는 취(娶), 재(再), 삼(三)으로 표시하고 있다. (참고: 庶子의 生母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즉 자손은 있으되 그 자손을 낳아준 어머니는 “없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배우자에 대한 신상정보의 서술 방식에서도 적자손과 서자손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적자손의 경우에는 “室+본관+성씨+父+이름.....”의 형식을 사용하고 서자손의 경우에는 “娶+본관+성+이름+女.....”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전자의 경우에는 “室順興安氏父○○.....”인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娶順興安○○女.....”로 표기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서자손(庶子孫)들은 죽음의 언어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적자손(嫡子孫)들 및 그 배우자들은 모두 졸(卒)이라는 용어로 대우를 받았지만 서자손(庶子孫)들과 그 배우자들은 몰(歿)이라는 용어로 차별받고 있다. (참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서자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그야말로 “존재는 하되 보이지 않는” 유령(?)으로 취급 받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일부 안동김씨 족보의 경우, 죽음의 언어에서만은 적서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卒자를 사용한 예가 보인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 “전향적(前向的)” 자세가 돋보인다(?!). 그러나 반남박씨의 경우에는 보수(?)적 색채가 농후해서 죽음의 언어에서도 서자손을 차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서자손과 그 배우자들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歿(또는 沒)로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적서의 구분에 대해 무슨 사생결단(死生決斷)의 문제인 것처럼 거의 편집증적(偏執症的)(파라노이아) 강박(强迫) 증세를 보인 이유가 무엇일까? 서자손들이 홀대 받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이유는 간단하고도 분명하다. 족보 편찬/제작의 주체들(모두 적자손들)이 적서의 엄격한 구분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적자손들의 “기득권(旣得權) 보호(保護)” 때문이었다. 적자손들은 서자손들에게 아무런 근거도 명분도 없는 “원죄(原罪) 의식(意識)”을 주입(注入)시킴으로써 자신들이 점유(占有)하고 있는 기득권 영역에 서자손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것은 파렴치한 횡포요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저지른 유치하고 비루(鄙陋)한 비행(非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제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이다. 配가 되든 室이 되든 혹은 娶가 되든 그게 무슨 상관이며, 모든 업(業)을 뒤로하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간 혼령(魂靈)에게 卒이 되든 歿(沒)이 되든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으랴!

부탁말씀: 위 글의 복사, 이동, 절취, 변조, 인용을 금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