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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연암집 속 새로운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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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5:28 조회2,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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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연암집속 새로운 사실들

     문화일보 기사입력 2005-04-12 16:44 |최종수정2005-04-12 16:44

(::정조와 '미묘한 관계' 엿보여::)

국역 연암집 ’ 제2집은 지금까지 번역,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이 다수 실려 있는 만큼 연암 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우선 작품 편수는 40여수에 불과하지

만 내용이 주옥같은 한시들이 모두 번역돼 있어 연암이 산문작가

로서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기

교면에서 탁월하고 시각과 청각적인 이미지를 극명하게 살린 장편

및 단편 한시들이 모두 번역돼 있어 당대 문인들로부터 연암이

시로서도 평가받은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김명호 교수는 ‘

해인사’같은 작품의 경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해인사를 노

래한 글 중 전무후무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조부 박필균(朴弼均) 의 가장(家狀·행장)이나 정조의 영전에 바

친 진향문(進香文) 등은 연암의 정치관이 드러난 중요한 글임에

도 불구하고 난해해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번에 번역됐다.

연암이 속한 반남박씨(潘南朴氏) 가문은 숙종대를 거치면서 한

집안이지만 당론(黨論)이 노론과 소론 둘로 갈라졌는데, 연암의

직계는 조부인 박필균의 행장에서 보이듯 영조와 정조가 추구한

탕평책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노론 주류의 입장에 서 있었다.

이들에게 영조와 정조는 시비를 분간해 정의를 바로 세우지 않고

간신과 충신을 뒤섞어 중용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군주였다.

따라서 조선후기 북학파를 대표하는 실학자인 연암과 정조는 우

리의 통념과 달리 실제는 매우 미묘한 관계였음을 이번에 번역된

글들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정조의 입장에서 연암 은 회유의

대상이었던 반면, 연암 은 이를 회피하기 위해 멀리 비켜나 있었

던 이유 등 당시 정치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는 글들

인 것이다.

이밖에 유명한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와 같은 명화들을 감

상하고 쓴 제발(題跋)들이나 정조의 명으로 제주도 사람 이방익

이 중국해상에 표류한 사건을 서술한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

’역시 처음 번역 소개되는 것으로 연암의 미술에 대한 조예는

물론, 해외지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다. ‘양반전’

등‘연암집’ 8권 ‘방경각외전(放■閣外傳)’에 수록된 연암의 한

문소설 전부를 새롭게 번역해 기존 선집류에서 오역된 부분들을

철저히 바로잡은 것도 성과다.     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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