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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박필현의 난 (이인좌의 난, 무신난)과 관련한 사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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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형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6:46 조회1,7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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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무신난은 정읍에서는 '박필현의 난'이라고 하고, 일반적으로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인좌의 난'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의 대강의 개요는 붕당으로 얼룩진 조선시대 끊임없는 갈등 연속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종때는 일부 소론세력을 등용했으나, 영조에 와서는 노론세력으로 전환하자 이에 지방으로 밀려난 소론강경파 세력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항하게 됩니다.

이에 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영조는 그 세력들은 역신으로 간주해 처벌하고, 주도자들은 능지처참하고 그 자손이나 관련자들은 유배 등 징계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론 강경파의 대표적인 주도세력이 반남박씨 반성부원군파 17世 필(弼)자 항렬 박필현, 박필몽과 그의 자손 18世 사(師)자 항렬입니다.

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우리 선조 박필현의 형제 박필량의 아들 박사공이 전남 신안군 안좌도라는 섬까지 오게 된 배경을 족보와 관련된 원로분들과 보학에 대한 학식이 있는 분들의 조언과 가르침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부정적이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집안은 "역신의 집안"입니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중앙집권적인 조선 조정 영조중심의 입장에서 평한 것이고, 조선 붕당의 역사를 "동인이 맞다. 서인이 맞다.", "노론이 맞다. 소론이 맞다."하는 것은 논할 가치도 없으며, 논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시는데로, 그 시대의 정치적 성향이므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사학을 전공하는 교수님들도 평하기 힘들고, 평하는 자체가 오류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표면적으로 얼핏 잘못 생각하면, 역신 집안의 뿌리를 찾는 것이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목표를 향해 정진해야 할 젊은 사람이 다소 무모한 행동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살면서 한 번쯤은 그것이 부끄럽고 수치수러운 일이든 자랑스런 일인가를 뛰어 넘어 조상의 뿌리를 바로 아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이는 과거의 정체를 바로 아는 것이 현재의 나를 바로 인식하는 기회이며, 선조 잘된 점은 더 발전시키고, 다소 아쉬운 점을 좀 더 개선해 나아가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며, 후손에게 보학을 통한 역사적 산 교육을 전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중,고등학교 정규 국사 교육에서도 우리 역사의 부정적인 면은 다소 감추고, 긍정적인 면은 조금 확대해 표현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런것이 옳고 그른것을 떠나 다른 모든 국가의 역사서도 그럴 것이고, 세상을 살면서 개개인의 삶의 역사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진실은 살아있고 공부하는 사람으로 저는 좀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한가지 덧 붙이자면, 반남박씨는 조선조 정통 관료출신도 많은 선비집안이고, 명문가문이 분명하지만, 19세기 학계에서 부정적인 면으로 평가하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도정치시기에 안동김씨 등과 더불어 정국을 주도했던 대표 가문 중 하나 였습니다. 허나 박지원, 박세당, 박영효등 그 시대 중국중심의 사대주의와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그 시대에는 사문난적이라고 평했지만, 개혁적이고 실용적인 위대한 실학자를 배출한 것도 우리 반남박씨가문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모든 역사, 모든 가문은 음과 양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단순히 보학자료나 고견을 참고하여, 우리 가문을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붕당의 역사을 공부하고 이를 나름대로 체계화 하고자 한 것이므로 혹, 다른 의도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고, 급변하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요즘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함께 숙제가 있으면 풀어가는 노력들이 우리 선조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노력이고, 미래 후손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자세일 것입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남박씨 모든 종친들의 건승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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