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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박우형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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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이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6:48 조회1,787회 댓글0건

본문


南郭公(諱 東說)의 3子중 次子 潢(懦軒公) 先祖가 堂叔되시는 東彦 先祖의 養子로 出系한다.
그 분의 兄 濠(僉樞公)先祖는 六友堂 선조와 함께 족보를 만든다.
이것이 반남박씨 최초의 족보, 즉 임오보(1642년. 인조20년)이다.
그 후 여섯 차례 족보를 만들었고 여덟 번째 족보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350여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족보란 개인의 역사가 집약된 씨족의 역사책이다.
세상을 떠난 먼 훗날 그 사람의 흔적이 기록되어 남는 것은 족보밖에 없다.
제적등본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고,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도 가족관계는 기록되지 않는다.

우형님!
우형님을 우회적으로 비난한다는 말 수용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글이 아니기에 서운하다면 몰라도 비난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형님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우형님의 글에 답을 주신 승모님, 창서님, 태서님, 찬무님 모두 반남박씨의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이십니다.
기록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정변, 사건 등)을 검토 분석하여 결론을 내리실 것입니다.
기록이 없는 한 어떤 결론도 推定입니다.

제가 글을 올릴 당시 제가 볼 수 있었던 기록은 師恭 선조님의 无后와 경신수록이었습니다.
비난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댓글에 올렸을 것입니다.
수록을 아시는 분보다 모르시는 분이 더 많습니다.
일반적인 수록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잘못된 수록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단순한 생각으로 족보 참여를 거부했을 때 먼 훗날 후손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강조했고 모두 족보 제작에 참여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수록을, 수록된 종친을 비난 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분들, 그분의 선대들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알면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 저기 올려진 우형님의 글을 볼 때 우형님은 자신의 족보 기록을 보지 않았습니다.
1권 108면 師恭 선조님 기록 ‘以伯父之罪謫居箕子島今安佐島始居’를 한번만이라도 보셨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신보를 만들때 우형님 집안 어른께서 올리신 내용을 인정하고 따랐다면, 의문을 갖지 않았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곽공파 세보편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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