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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박홍수 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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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중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517회 작성일 16-01-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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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휘 박 홍수(朴弘壽) 1814~1901. 응인-동위-梠-세준-태서-弼 -師說-裕源-宗玟-弘壽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대직(大直).1866년(고종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53세의 늦은 나이에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장령․대사간과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호군(護軍)으로 있던 1890년에는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로 특탁(特擢)된 뒤 같은해 형조판서에 올랐고, 대호군(大護軍)으로 있던 1893년 2월에는 조관(朝官)으로 나이 80이 되었다고 하여 노인가자(老人加資)를 받았다.
이해 또한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상호군(上護軍)으로 있었다.

<문과방목>
박홍수(朴弘壽) More Info.
고종(高宗)3년(1866년), 정시(庭試) 병과7(丙科7)
생년(生年) 1814년, 갑술
본관(本貫) 반남(潘南)
거주지(居住地) 경(京)
부(父) 박종민(朴宗玟)
조부(祖父) 박유원(朴裕源)
증조부(曾祖父) 박사열(朴師說)
외조부(外祖父) 이주오(李周吾)
전력(前歷) 유학(幼學)

<조선왕조실록>
고종 30 2/8 【조정 관리로서 나이 80 이 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품계를 올려 준 사람은 행 대호군(行大護軍) 박홍수(朴弘壽) 등 81명이었다.】

고종 30/03/10 민영달과 박홍수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민영달(閔泳達)을 예조 판서(禮曹判書)로, 박홍수(朴弘壽)를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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