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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공과 나주 왕곡면 박포(朴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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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도정공파 박찬규님께서 20231025일에 홈페이지 자유계시판 6203에 올린 기록입니다.

 

 

반남면과 북쪽으로 이웃하고 있는

왕곡면 신포리에 가면

5세조 문정공(尙衷) 할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지명으로 박제되어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나주시에서 발간한

나주시지 제4247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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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포(朴浦) / 신포리 2

(1) 자연환경과 마을의 형성

박포(朴浦)는 신포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전에는 마을 앞까지 강물이 들어와 배가 닿았다고 하나

지금은 그러한 흔적마저 없고

마을 동쪽에 박포제(朴浦堤라고도 함)가 있는데

예전에는 4천평 정도 되는 제방(堤防)이었으나

그동안 빗물에 흘러내리는 사석(砂石)으로 매몰되어 논으로 변하였고

겨우 1천평 정도가 옛모습을 지니고 있다.

박포에서 내동(內洞)으로 가는 고개를 박포고개라 하고

박포 동북쪽에는 산정(山亭)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고려말의 학자 반남박씨 상충(朴尙衷)

유년시절 배를 타고 서당에 다니느라 왕래하였는데

뒤에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정랑(禮曹正郞)이 되고

문정(文正)의 시호(諡號)를 받자

이곳 서당선생이 출세한 박씨(朴氏)와 포구(浦口) 이름을 따서

박포(朴浦)라 칭하였다 한다.

박상충의 아들에 좌의정을 지낸 박은(朴訔)이 있다.

 

한편 다른 설에는

이 마을에 장기를 잘 두는 박포라는 명수가 있어

이를 당할 사람이 없고 박학한 그 묘수에 감탄한 나머지

마을이름을 박포라고 칭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 마을에는 고려 때 반남박씨(潘南朴氏),

조선조 초에는 나주나씨(羅州羅氏)가 터를 잡았으며

1680년께 파평윤씨(坡平尹氏)

이곳으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신포리 2(박포산정신흥)에는

김해김씨 10, 함평이씨 2, 탐진최씨 3,

나주임씨 3, 나주정씨 2호 그리고 광주정씨 3,

나주나씨 2, 경주최씨안동권씨담양전씨광산김씨

함양박씨 등 65159(79, 80)

농사짓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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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이

문정공 선조께서

유년시절을 박포 마을에서 지내셨다는 것을

사실로 고증해 주는 것은 아니겠으나,

당시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외가(光州김씨 부인의 친정)에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문정공께서 태어나신 곳은

공암현 마산리(현재 서울 독산동)였지만

어린 시절은 박포 인근에서 지내셨음직도 하다.

여하튼 통상 지명으로 쓰이지 않는 자가

지명에 붙어 전해 내려오는 것을 보면

반남 일대의 유력 가문이었던

우리 선조의 삶의 흔적일 개연성은 크다 하겠다.

이처럼 반남 일대 山河 곳곳에는

우리의 먼 선조님들께서

수백년간 삶살아오신 흔적이

적잖이 잠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231025

도정공후 찬규 謹撰

 

 인터넷주소:      반남박씨대종중 홈페이지 | 반남박씨, 박응주

위의 주소를 클릭하시면 원본의 기록이 출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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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 글


공암현 마산리의 기록은

1 문정공 매제(妹弟) 유백유 선생이 쓰신 문정공(文正公) 행장

 

공의 휘는 상충(尙哀)이요, 자는 성부(誠夫)며 성은 박씨로서 나주 반남인 이다. 증조부의 휘는 의()니 급제(及第)하였고, 조부의 휘는 윤무(允茂)니 진사(進士), 선고(先考)의 휘는 수()니 봉익대부 밀직부사·상호군으로 치사(致仕)하였다. 밀직공이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김정(金晶)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32녀를 낳았는데 공이 장남이다. 원조(元朝) 지순(至順) 임신년(1332, 고려 충혜왕 2)에 공이

공암현(孔嚴縣) 마산리(馬山里)에서 출생하니

(公 生於 孔巖縣馬山里)

 

2 급제공 휘 의 사적(及第公 諱 宜 事蹟)

 

휘 의() 의 묘는 실전이다 峰峴(봉현)에서 十里(십리)되는 공암현 馬山里 한 고총古冢이 있는데 朴氏山(임진보에는 山所라고 한다)이라는 전설傳說이 있으나 그곳에 사는 가 그곁에 여러번 장사葬事를 하였고 또 반남리에는 鄭家의 죽림竹林속에 고총古冢이 있는데 또한 박씨묘라는 말이있어 英祖 庚辰年十七世孫道源 두곳을 찾아보았으나 모두 證據가 없었다. 중략(中略)•••••••

傳說에는 가 마산에 있다고 하나 馬山이 처음은 어느인지몰라서 十三世孫世采가 일찌기 坡州에살 때 비로소 그 州境馬山이 있다는 말을 듣고 또 전설에 朴氏墓가 이곳에 있다는 말도 있어서 몇해동안 찾다가 退任한뒤에 羅州峰縣에서 十里되는 곳에 馬山里라는 이름이있고 里中에는 一岩이 있는데 암석에 구멍이 많기 때문에 孔岩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孔岩아래는 한 麗朝古冢이 있는데 傳說에는 朴禹의 무덤이라 하고 또한 馬山里안에는 한 마을이있는데 朴哥村이라고 하엿으니 대개 는 글字 音訛傳되기 위운 것이라. 地名村名은 서로 맞으니 이것이 혹시나 證據가될까. 다만 麗朝葬地에는 반드시 幽顯標識가 있기 때문에

 

道源按察使왔을 때 땅을 깊이 파 보았으나 마침내는 證據가 없었으니 어찌 의심이 나지 않겠는가. 혹은 말하되 어느 때인가 호장공의 改築할 때 墓誌가 묻혔는지를 찾으려고 瑩域을 널리 파보았으나 마침내 所得은 없었으니 또한 이상한 것이 아닌가.

 

 

3 21 거창부사 운수(居昌府使朴雲壽) 께서 쓰신

덕은유고先居記

密直公居羅州孔巖縣馬山里仕于松京居北部五冠山三里文正公因居焉平度公隨聖祖入漢都居東部雙栢亭

밀직공은 나주 공암군 마산리에 거주했고, 송경(개성)에서 관직을 맡은 후에는 송경 북쪽 오관산 삼리(三里)에 살았습니다. 문정공 또한 그곳에 거주했습니다. 평도공은 성조를 따라 한성(漢城=서울}로 건너가 동쪽 쌍백정에 정착했습니다.

 

 

문순공이나 도원관찰사, 운수부사(초대미국공사 박정양 조부)께서는 양천의 고암현 마산리 보다는 반남 봉현에서 10리되는 마산리를 선호 하신 것 같다

 

 

조선조에서 마산(馬山)1914府郡面이 통합되면서 왕곡면에 편입되어 마산이라는 명칭은 없어지고 왕곡면 화정리에 마산 마을만 남아있다 이마을에는 남곽공후손 마산종중 선향 춘서님이 관리

 

문정공이 공암현? 에서 출생하고 나주 마산면에서 공부하시다가 밀직공이 관직을 맡으시니까 개성에서 거주하시고 문과급제를 하시고 奉順大夫 判典敎寺事 右文館直提學에 오르셨다.


 

문정공 행장은

태종 13년 계사년 전통훈대부 사간원직사간 보문각직제학

지제교 겸 춘추관편수관 유백유 지음


공암현은 고려 충선왕2 1310년  양천현으로 개명되었는데

100년후 문정공 행장에 개명된 양천현이 아니고 100년전 공암현으로 쓴다는것도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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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왼쪽부터 왕곡면 신포리 영산강          왕곡면 신포리 朴浦사거리    朴浦교차로     마산마을 화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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